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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4:15:45

창덕궁 부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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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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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昌德宮 芙蓉亭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 1동
지정연도 2012년 3월 2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 1707년 창건
파일:부용정.jpg
파일:창덕궁_부용정_근경.jpg
<colbgcolor=#bf1400> 부용정[1]
파일:창덕궁_부용정_야경.jpg
부용정 야경[2]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주합루와 같이 소개한다.

1. 개요2. 이름과 현판3. 역사4. 구조
4.1. 주련
5. 부용지6. 여담7. 매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창덕궁 후원정자이다. 주합루의 남쪽에 있으며, 창덕궁 후원을 관람할 때 주합루와 함께 가장 먼저 보는 건물이다.

2. 이름과 현판

부용(芙蓉)연꽃한자어이다. 현재 현판 글씨는 1903년(광무 7년)에 창덕궁 후원의 감독직을 맡았던 동농 김가진이 썼다.

3. 역사

파일:동궐도 부용지 영역.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 부용정 영역
조선 초 ~ 중기에는 없었으며 1707년(숙종 33년)에 창덕궁 후원에 처음 세웠다. 당시 이름은 택수재(澤水齋)였으며, 이후 1792년(정조 16년)에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조 연간에는 규장각이 있던 주합루와 같은 영역이라 신하들이 활동 공간으로도 많이 활용했으나, 정조 사후에는 단순한 휴식 공간으로 주로 이용했다.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헐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2012년 3월 2일에 문화재청에서 보물 제1763호로 지정했으며 2012년 9월 보수 공사 때 일제 때 변형된 지붕을 《동궐도》대로 복원했다.#

4. 구조

4.1. 주련

5. 부용지

파일:창덕궁_주합루_부용지_전경.jpg
<colbgcolor=#bf1400> 부용지. 좌측 건물은 부용정. 우측 건물은 주합루이다.[3]
파일:창덕궁_후원권역_부용지.jpg
부용지 야경[4]
부용정의 연못이다. 동서 길이가 34.5m, 남북 길이가 29.4m인 네모난 형태로 수심은 약 1.5m이며 연못 가운데엔 둥그런 을 두어 동양전통 세계관천원지방(天圓池方)을 나타내었다. 남쪽엔 부용정, 북쪽엔 주합루, 서쪽엔 사정기비각, 동쪽엔 영화당이 있다. 위에 언급한 '부용(芙蓉)'이란 이름 뜻처럼 원래 연못에는 연꽃이 많았다. 여름철 부용지를 가득 메운 연잎과 매미소리

연못 자체는 부용정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1634년(인조 12년)에 연못을 파고 뱃놀이를 했다고 하며 정조 시기에 고쳐지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부용지란 이름은 조선 시대 기록에서는 찾기 어려우며, 창건 당시에는 '용지(龍池)'라 불렸고, 숙종 ~ 정조 시기엔 '태액지(太液池)'라 했다. '태액(太液)'의 뜻은 '큰 연못'이고, 옛 중국 황궁의 연못 이름에서 유래했다.[5]

6. 여담

파일:보물_제1763호_창덕궁_부용전(2012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jpg}}} ||
<colbgcolor=#bf1400> 부용지의 섬[6]
정조는 부용정에서 관료들을 대상으로 짓기 시험을 주관했는데, 제 시간에 시를 못 지은 관료를 부용지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으로 귀양보내고(...) 부용정 앞에서 껄껄대며 폭소했다고 한다.[7] 물론 부용지에 조각배를 띄워 놓은 채 시험을 치렀고 귀양 가는 사람이 노를 저어서 섬까지 가야 했다.
파일:수원_방화수류정_전경_(촬영년도___2015년).jpg}}} ||
<colbgcolor=#bf1400> 방화수류정[8]
부용정을 고쳐 지은 정조는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정원 건축 양식을 좋아했는데 이 취향을 몇 년 후 수원화성의 일부로 지은 방화수류정에 그대로 반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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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창덕궁 달빛기행〉 영상
〈창덕궁 달빛기행〉 코스 중 한 곳이다. 아름다운 밤 하늘의 달빛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7.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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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옷소매 붉은 끝동〉의 부용지 낚시 장면
2021년 방영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영조(이덕화 분)와 세손(후일 정조, 이준호 분)이 나란히 앉아 부용지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덕화 선생의 오랜 취미기도 하다 실제로 정조가 부용지에서 낚시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2] 사진 출처 - 문화재청.[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사진 출처 -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5] 당나라 대명궁, 금나라 대녕궁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다. 현재 베이징중난하이도 태액지로 불렀다.[6]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7] 이 술수에는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도 예외는 없었다...[8] 두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