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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15:22:33

창덕궁 농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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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농산정
昌德宮 籠山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636년 (창건 추정)
파일:창덕궁 농산정.jpg
<colbgcolor=#bf1400> 농산정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소요정, 취한정, 취규정, 청의정, 태극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

1. 개요

창덕궁 후원 옥류천 권역에 있는 건물이다.

이름은 정자이지만 사방이 트인 일반 정자들과 달리 마루온돌방이 있어서 사람이 묵을 수 있었다. 또한 부엌도 있어서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왕이 쉬려고 만든 별당 혹은 옥류천 일대에서 가벼운 행사 등을 할 때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용도였던 듯 하다.

2. 이름

'농산(籠山)' 뜻은 '으로 싸여있다'이다. '농(籠)'은 직역하면 '대나무 바구니', '같은 상자'를 말하는데 의미를 확장해서 '둘러싸다'는 뜻으로도 쓴다. 산 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을 건물의 이름으로 쓴 것이다.

3. 역사

창건 시기는 모른다. 다만,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공식 기록에 처음 나타난 때는 정조 때인 1792년(정조 16년) 3월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보단에 참배하기 전에 여기서 여러 번 묵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년) 2월에는 현륭원 행차를 대비해 혜경궁 홍씨가마를 메는 예행 연습을 후원에서 한 뒤 수고한 신하들에게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더 고생했을 듯 하다[1]

순조는 여기서 관리 및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도 했다. 입직한 음관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2]##, 성균관 유생의 응강[3]을 행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파일:옛날 농산정1.png
<colbgcolor=#bf1400> 왼쪽은 《동궐도》의 농산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농산정

4. 구조



[1] 창덕궁 후원에서 옥류천 일대를 가려면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한다.[2] 이를 응제(應製)라고 한다.[3] 應講. 강경과(講經科)에 응(應)하는 것. 강경과는 과거에서 외운 경서를 암송시킨 후 등락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다.[4]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5]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6]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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