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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5:40:01

환갑

회갑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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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환갑잔치3. 사갑제4. 기타

1. 개요

/ Sixty years old[1]간지십간십이지로 나뉘어지는데 매년 십간과 십이지를 하나씩 세어나가다보면 10과 12의 최소공배수인 60개의 서로 다른 간지가 지나 다시 자신이 태어난 해의 간지로 돌아오게 된다.[2] 이를 '한 갑자가 한 바퀴 돌았다'라는 뜻의 환갑이라고 한다. 즉 환갑에 현대적인 나이와 의미를 부여하면 60세 생일이 된다. 비슷한 말로 회갑(回甲), 화갑이 있으며, 태음력은 30진법으로 날을 세기 때문에 60이란 수는 특별한 수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1964년생이 해당. 대학 학번으로 치면 보통 83학번[3]이다.

환갑의 다음 년도 생일을 진갑(進甲)이라 하는데 다른 말로 망칠(望七)[4]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이 되면 정년에 포함하게 된다. 인생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다.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은퇴이민 비자를 발급해 주며, 이들 국가에서는 환갑이 되자마자 은퇴이민을 가는 사람도 있다. 만학도들 중에는 환갑이 넘어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정규 고졸 학력을 인증받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 대학이나 대학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2. 환갑잔치

파일:external/www.bongkim.com/c610115500ebfa1b2e21d1833eec8ac6_4kY1HOnebJalqW3OSc.jpg

예로부터 갑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에만 존재하는 전통으로 노인[5]들이 만 60세까지[6] 살아 있다면 그 기념으로 벌이는 생일 잔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했는데 세는나이로 60살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만 60세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비공식 및 비법정 단위인 한국식 나이로는 61살로 간주된다.

우선 1960년대 중반 이전에는 낮은 의료 기술 수준과 살해, 전쟁, 기근 등으로 평균 기대 수명이 40대 ~ 50대 정도이며, 고려시대 왕의 평균 수명이 42.3세[7] 조선시대 양반의 평균 수명이 51 ~ 56세[8], 조선 왕의 평균 수명도 만 나이 기준 45.5세(세는나이는 47.1세)[9],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이 50.8세[10], 조선시대 후궁의 평균수명이 56세, 1960년의 평균 수명은 53세[11]로 60세에도 못 미쳤기 때문에 환갑까지 사는 게 쉽지 않았고[12] 이런 이유로 환갑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며 크게 잔치를 벌였다.[13] 남성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예전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환갑을 맞을 확률이 더 높았다. 유아사망률을 제외해도 50대 초중반인 탓이며, 40살만 되어도 손주를 가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게 일상이었고, 45살부터는 노년기에 진입하며,[14] 오순(세는나이 50세), 망륙(만 50세) 잔치도 있었다. 이는 중국[15]일본[16], 베트남도 환갑이 되면 크게 축하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저 나라들도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평균 수명이 70세를 넘기면서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중요성이 퍽 떨어지게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나 무단 통치기에 태어난 사람이 환갑을 맞았던 1950년대 후반~1970년대에는 보통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잔치를 크게 치렀으며[17], 문화 통치기에 태어난 1920년대생들이 환갑을 맞는 1980년대 이후로는 시골에서 치르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으나 뷔페에서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도시 사람들은 뷔페에서 치른 편. 보통 1920년대 출생자부터 평균 수명이 환갑을 넘기 시작했다.[18] 특히 1990년대 중/후반[19]을 기점으로 평균 수명이 70세를 넘기며 환갑을 넘기는 것은 매우 흔해 빠진 일이 되어 버렸고[20], 특히 시골의 경우에는 이촌향도 현상과 극심한 고령화 및 저출산으로 그 현상이 더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에[21] 나이 60을 먹은 것이 그리 대수로운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1930년대생이 환갑인 1990년대에는 환갑을 넘기는 사람이 흔해져도 완전히 노인의 시작으로 인식되고, 문화 지체도 있어 환갑잔치를 뷔페에서 대부분 치렀으나, 1940년대생들이 환갑을 맞는 2000년대부터는 그렇게 큰 잔치를 열지 않고 있다.[22] 설사 챙긴다고 쳐도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사하는 정도다. 뷔페에 가도 잔치를 하기 보다는 가족들과 그냥 먹는 셈이다.[23] 거기에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부모 중 연장자[24]가 환갑을 맞이할 경우 자식들은 (일반적으로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지만) 늦둥이일 경우 아직 20대 초반이거나 심하게는 고등학생이라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경우 환갑 잔치를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끼리나 친척들 불러서 생일잔치를 하거나, 외식을 하거나 뷔페에서 그냥 간단한 식사를 하기만 한다. 단순히 식사로만 끝내지 않는다면 환갑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다.[25] 또한 부모가 양친 다 아직 살아 있는 경우도 많으며[26], 조카, 형제들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 60살에 사망하면 요절 취급을 받으며, 환갑은 과거와는 달리 한창 나이일 때다. 더군다나 위에 썼던 것처럼 2010년대 중반, 이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는 60대 초중반도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리는 시대이니... 게다가 환갑이면 아직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이 아니다. 2020년대 초중반 현재 기준으로 환갑까지 생존할 확률은 80~85% 정도이며, 50세 이후 사망률이 늘어나지만 사망자 절반 정도는 유아기 때 사망한 사례이긴 하다. 이 때문에 과거에 비해 사갑제를 지내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조선시대의 환갑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는 90세 정도로 환산되어 장수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1980년대의 환갑도 현재 70대 초중반 정도로 환산되는 편이다. 반대로 현재 환갑이 1980 ~ 1990년대의 40대 후반~50대 초반과 비슷하며 조선시대의 불혹과도 비슷한 위치이다. 0.8 계산식으로 하면 1980년대의 48살이 오늘날의 환갑하고 맞먹는 셈이다.[27]

요즘은 고희(70세) 쯤은 되어야 잔치를 그나마 크게 벌인다. 자녀가 아직 20대 중후반~30대 초중반에, 늦둥이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인 경우가 많은 환갑과는 달리, 70세 정도가 되면 자식들은 아무리 젊어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중반, 보통 30대 중후반 ~ 40대 초중반인 데다 사회에도 진출하고 결혼도 해서 자녀들도 낳은 경우가 많아서 잔치를 여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인해 시기가 늦추어진 셈. 그나마 요즘 들어서는 남녀 불문하고 고희를 넘기는 것도 흔해지면서 이것도 대체적으로 삼가는 경우가 과거보다 증가하고 있고, 대신 희수(77세)[28]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법 잔치를 크게 벌이며, 80살, 90살, 100살도 마찬가지다. 저출산으로 인해 돌잔치는 여전히 위상이 높은 걸 생각하면 문화란 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대에서도 지금은 부모님 환갑을 이유로는 청원휴가조차 받기 어렵다. 하지만 옛날에는 부모가 환갑을 넘긴 외아들은 6개월 방위병으로 보직을 변경시켜 줬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비슷하게 100일 잔치 역시 의료 기술의 부족으로 영아 사망이 잦던 옛날에 100일을 무사히 넘겼으니 하늘이 도우셨다며 기념 잔치를 한 거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된 요즘엔 의미도 없어졌다.

21세기 들어서는 환갑을 넘어서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2020년대 들어서 환갑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양력 생일이 많아지고 있으며, 1980년대생이 환갑이 되는 2040년대부터는 대부분이 양력으로 환갑을 치르게 될 듯 하다. 음력에 맞춰 날짜를 바꿔가며 생일을 맞아도 일반적으로 가족단위로 축하를 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으나, 환갑잔치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대외적으로 생일이 알려지는데, 이럴 경우 양력으로 고정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 부모가 동갑내기인 경우 아예 같은 날에 환갑잔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아예 부모가 생일이 같은 경우도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까지 음력 생일을 민간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현재도 많은 편인데, 이에 해당되는 경우 음력 11월이나 12월 생 중 일부는 이순과 환갑, 혹은 환갑과 진갑을 아예 동일한 연도에 치르는 경우도 있다.

3. 사갑제

질병, 사고 등 모종의 이유로 환갑을 맞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환갑에 지내는 제사를 사갑제, 망갑제, 갑사, 갑제라고 부른다. 사갑제 때는 영가복을 태우는 관습이 있다. 시중의 한복점에 가면 사갑제를 위한 영가복을 판매하고 있으며, 영가복은 불에 잘 타는 재질로 만든다.

사갑제가 생긴 이유는 수명이 짧았던 시절[29]에 부모가 회갑까지 사는 것은 자식들에게 큰 기쁨이었는데, 회갑잔치를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에게 사후에라도 회갑을 챙기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사갑제로 발전했다.

만약 부모 2명 중 하나만 살아서 환갑을 맞는다면 죽은 부모의 사갑제를 지낸 후 살아 있는 부모의 환갑잔치를 베푼다.

사갑제를 지낼 수 있는 나이는 지역마다 다른데 어떤 지역은 환갑 이전에 죽은 사람이면 나이에 관계없이 사갑제를 지낼 수 있으나, 다른 지역은 환갑으로부터 10년 이내, 즉 만 나이로 50대에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만 사갑제를 지낼 수 있게 하기도 했다.

4. 기타


[1] Sexagenarian이라는 말도 비슷한 뜻이지만, 정확히는 환갑이 아니라 '60대의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61세~69세는 환갑은 아니지만 Sexagenarian이다. 환갑이라는 단어에는 60세라는 뜻과 회갑, 즉 간지가 한 바퀴 돌아왔을만큼 장수했음을 기념하는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하지만, 오로지 한자문화권만에서의 개념이므로 영미권에 적절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60살만을 일컫는 Sixty years old로 번역할 수 뿐이 없다.[2] 예를 들어 경자년은 1960년 이후 2020년으로 돌아오고, 신축년은 1961년 이후 2021년에 돌아오고, 임인년은 1962년 이후 2022년으로 돌아오고, 계묘년은 1963년 이후 2023년으로 돌아오고, 갑진년은 1964년 이후 2024년으로 60년 만에 돌아온 해다.[3] 빠른/조기입학 1964년생은 82학번, N수생인 경우는 84학번 혹은 그 이후도 가능. 다만, 빠른 재수생도 83학번이다. 의치한은 1985년에 본과로 진입한 사람들이 해당한다. 만학도는 84학번 이후, 심지어 21세기(30대 후반~60세)의 중년에 입학한 경우도 있다.[4] 70세를 바라본다는 뜻.[5] 20세기 까지 기준으로, 그 당시의 60세(환갑)은 노인으로 간주되었으나 21세기 현재는 환갑의 나이는 노인으로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만 65세 이상을 노인 대상으로 간주한다. 다만 2010년대 초반까지는 환갑이 노인이라는 인식이 많긴 했다.[6] 출생 후 365.25×60일. 즉, 21915일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단, 1840~1899년 및 2040~2099년생 같은 경우는 하루가 빠진 21914일. 그레고리력에는 100의 배수이지만 400의 배수가 아닌 년도는 평년이기 때문.[7] 고려 왕 34명 중 환갑을 맞이한 왕은 태조(세는나이 67세, 만 나이 66세), 문종(세는나이 65세, 만 나이 63세), 명종(세는나이 72세, 만 나이 71세), 강종(세는나이 62세, 만 나이 61세), 고종(세는나이 68세, 만 나이 67세), 충렬왕(세는나이 73세, 만 나이 72세) 등 6명으로 조선 왕보다 1명 더 많았으나,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뜬 왕들이 조선 왕보다 더 많은 5명이라(덕종(세는나이 19세, 만 나이 18세), 헌종(세는나이 13세, 만 나이 12세), 충목왕(세는 나이 12세, 만 나이 11세), 충정왕(세는나이 15세, 만 나이 14세), 창왕(세는나이 10세, 만 나이 9세). 특히 강종은 환갑까지 단 4개월 남겨 두고 즉위했고, 창왕은 겨우 9세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역대 한국사 군주들 중 가장 단명한 군주가 되었다. 다만, 이 중에 충정왕과 창왕은 자연사가 아닌데, 충정왕은 독살, 창왕은 사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균 수명이 낮았으며, 신종은 환갑 생일을 단 6개월 남겨 두고 아깝게 세상을 떴다. 고려 시대 귀족들의 평균 수명도 비슷한 수준이었고, 고려시대 이전 (고조선, 삼한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에는 더 낮았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백제 위덕왕 (74세이나 신라 지증왕 (77세), 고구려 장수왕 (97세)처럼 환갑을 넘긴 군주는 있었다.[8] 환관은 평균 수명이 70세였다.[9] 역대 조선 왕 27명 중 환갑을 맞이한 군주들이라곤 태조(세는나이 74세, 만 나이 72세), 정종(세는나이 63세, 만 나이 62세), 광해군(세는나이 67세, 만 나이 66세), 영조(세는나이 83세, 만 나이 81세), 고종(세는나이 68세, 만 나이 66세)까지 단 5명 뿐이다. 나머지 22명의 군주들은 모두 환갑도 되기 전에 사망했다. 숙종은 환갑이 되기 딱 1년 3개월 전인 1720년 7월에 세는나이 60세, 만 나이 58세를 일기로 숨졌으며, 게다가 보편적으로 사갑제(갑사, 갑제)를 지낼 수 있는 나이인 50대에 사망한 왕도 태종(세는나이 56세, 만 나이 54세), 세종(세는나이 54세, 만 나이 52세), 세조(세는나이 52세, 만 나이 50세), 중종(세는나이 57세, 만 나이 56세), 선조(세는나이 57세, 만 나이 55세), 인조(세는나이 55세, 만 나이 53세), 순종(세는나이 53세, 만 나이 52세)까지 역시나 단 7명에 불과했으며, 정조(세는나이 49세, 만 나이 47세)와 순조(세는나이 45세, 만 나이 44세)와 효종(세는나이 41세, 만 나이 39세)는 40대에, 문종(세는나이 39세, 만 나이 37세), 성종(세는나이 38세, 만 나이 37세), 인종(세는나이 31세, 만 나이 30세), 명종(세는나이 34세, 만 나이 33세), 현종(세는나이 34세, 만 나이 33세), 경종(세는나이 37세, 만 나이 35세), 철종(세는나이 33세, 만 나이 32세)과 연산군(세는나이 31세, 만 나이 29세)은 30대에, 헌종(세는나이 23세, 만 나이 21세)과 예종(세는나이 20세, 만 나이 19세)은 20대에 사망했고, 단종(세는나이 17세, 만 나이 16세)은 아예 성인도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10] 조선 왕비 37명 중 환갑을 넘긴 왕비는 정순왕후 송씨(81세), 정희왕후 윤씨(65세), 정현왕후 윤씨 (68세), 폐비 윤씨(61세), 단경왕후 신씨(70세), 문정왕후 윤씨(65세), 인성왕후 박씨(64세), 장렬왕후 조씨 (64세), 인원왕후 김씨 (70세), 정성왕후 서씨(64세), 정순왕후 김씨(60세), 효의왕후 김씨(67세), 순원왕후 김씨(68세), 효정왕후 홍씨 (73세), 순정황후 윤씨(72세) 등 16명이었다. 게다가 보편적으로 사갑제를 지낼 수 있는 나이인 50대에 사망한 왕비는 정안왕후 김씨(57세), 원경왕후 김씨(55세), 소헌왕후 심씨(51세), 안순왕후 한씨(54세), 인선왕후 장씨(56세) 등 5명, 40대에 사망한 왕비는 신덕왕후 강씨(40세), 인순왕후 심씨(43세), 의인왕후 박씨(45세), 인목왕후 김씨(48세), 폐비 류씨(47세), 인열왕후 한씨(42세), 명성왕후 김씨(42세), 폐비 장씨(42세), 철인왕후 김씨(41세), 명성황후 민씨(44세)로 10명, 30대에 사망한 왕비는 인현왕후 민씨(34세) 1명, 20대에 사망한 왕비는 폐비 윤씨(27세), 장경왕후 윤씨(24세), 선의왕후 어씨(25세) 3명이고 공혜왕후 한씨(18세), 인경왕후 김씨(19세), 효현왕후 김씨(15세) 3명은 아예 성인이 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떴다. 조선 왕 중 환갑을 넘긴 왕이 5명뿐이고 왕비는 16명이 환갑을 넘겼기 때문에 그 시절에도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길었으나 왕비는 후궁보다 수명이 짧았다.[11] 대략 1907년(8월 1일까지는 광무 11년, 8월 2일부터 융희 원년)생[12]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옛날에 환갑까지 사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동양 전통적으로 50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면 '요절'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건 평균수명과는 별개 문제다. 예전에는 영유아사망률이 높아서 평균수명이 50살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동양 전통에서 '요절'의 기준은 50살이었다. 이는 50살을 넘기고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고 그 당시 사람들이 "살만큼 사셨네."라고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다. 50살이 되기 전 40대 후반에 죽으면 명백한 요절이고, 50대 초반에 죽은 경우에는 '요절은 겨우 면했지만 그래도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으로 봤지 '살만큼 사신 분'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55살은 넘겨야 '살만큼 살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런 관념을 '평균' 수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옛날 사람들의 나이 감각을 평균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옛날 사람들의 관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옛날 사람의 형제 중에 2살에 홍역으로 일찍 죽은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이 "내 동생은 2살에 죽었는데 나는 올해 52살이니 지금 당장 죽어도 나는 여한이 없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13] 환갑을 맞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환갑에 지내는 제사인 사갑제(망갑제, 갑사, 갑제)도 이런 연유로 시작된 것이며, 만일 부모 둘 중 한 명만 환갑까지 살아 있을 경우 사망한 부모의 사갑제를 지낸 뒤 생존한 부모의 환갑잔치를 치렀다.[14] '노년기에 진입'한다는 표현은 약간 불명확한 감이 있다. 나이가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등 눈에 띄게 노화가 진행되는 사람을 '중늙은이'라고 불렀고, 그 나잇대를 가리키는 초로(初老)라는 용어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초로의 신사'같은 표현을 꽤 자주 접할 수 있었다.[15] 청나라 황제 중 환갑을 넘긴 황제는 천명제 (세는나이 68세, 만 나이 67세), 강희제(세는나이 69세, 만 나이 68세), 건륭제(세는나이 89세, 만 나이 87세), 도광제(세는나이 69세, 만 나이 67세), 선통제(세는나이 62세, 만 나이 61세) 단 5명 뿐이고, 청나라 황제 12명의 평균수명이 51.8세로 조선 왕보다 6.3년 더 긴데 이는 청나라 황제 중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뜬 사람이 동치제 하나뿐이고 건륭제가 89세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의 황제들은 환갑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는데(숭덕제 50세(세는나이 52세), 순치제 22세(세는나이 24세), 옹정제 56세(세는나이 58세), 가경제 59세(세는나이 61세), 함풍제 30세(세는나이 31세), 동치제 18세(세는나이 20세), 광서제 37세(세는나이 38세) 등. 숭덕제, 옹정제, 가경제는 보편적으로 사갑제를 지낼 수 있는 나이인 50대에 숨졌다.) 특히 가경제는 환갑을 단 2달 남기고 아깝게 숨졌다. 청나라가 이 정도이니 바로 앞 세대의 국가인 명나라 이전의 황제들은 더 낮았을 수도 있다. 이를 알려 주는 증거가 모든 중국 황제를 통틀어 환갑을 넘긴 황제는 단 36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16] 가마쿠라 시대 쇼군 전체의 평균 수명이 38.1세, 무로마치 시대의 쇼군 전체의 평균 수명이 39.5세, 에도 시대의 쇼군 15명 전체의 평균 수명이 51.5세였다.[17] 게다가 당시에는 조부모 중 한쪽만 살아서 환갑을 넘기는 경우는 물론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여 사갑제를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남자보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길기 때문에 여자가 환갑을 맞을 확률이 더 높았다.[18] 여자는 1910년대 중후반생, 남자는 1920년대 후반생.[19] 이 시기부터 민족 말살 통치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환갑을 맞기 시작했다.[20] 당장 대한민국 대통령 중 환갑을 넘기지 못한 사람은 없다. 이승만은 90세, 윤보선은 93세, 박정희는 62세, 최규하는 87세, 전두환은 90세, 노태우는 88세, 김영삼은 87세, 김대중은 85세, 노무현은 63세에 사망해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환갑을 넘겨서 사망했고 생존 중인 대통령도 이명박 82세, 박근혜 72세, 문재인 71세, 윤석열 63세로 모두 환갑을 넘겼다. 물론 대통령 자체가 환갑을 넘겨서 되거나 재임 중에 환갑이 되는(박정희, 노무현, 노태우 등) 대다수인 것을 감안해도 80세를 넘긴 사람이 많다.[21] 시골에 가면 환갑을 넘긴 이장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면장이 이장보다 젊은 경우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는 60대 초중반도 아저씨나 아줌마라고 불린다. 반대로 1980년대 ~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50세 넘으면 노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환갑이면 현재의 70대 초반처럼 완전히 노인으로 보이고, 완전히 노인 취급했다. 물론 동안이거나 노안이면 다르겠지만...[22] 단적으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10대 중후반 정도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40세만 되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환갑잔치만 해도 수많은 손녀 손자들이 있고 증손주도 보는 경우도 있었으나,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30대가 넘어서 결혼하는 경우도 많아지며 환갑이라고 해도 손자나 손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23] 단, 집안에 단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뷔페로 가는 등 환갑을 크게 치른다.[24] 보통은 아버지.[25] 보통 환갑 기념 가족여행의 목적지는 국내에서 그리 멀지 않고 부모님들이 선호할 만한 태국, 대만, 홍콩, 베트남, , 사이판 등 아시아권 지역 국가들이 꼽힌다. 해외여행이 어려운 이들은 제주도 가족여행을 추진하기도 한다.[26] 이 경우 부모의 나이는 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대개 85세를 넘으며 90대 이상도 흔한 편이다. 심지어 100세 이상도 있다.[27] 60이라는 숫자도 그렇고 문화 지체 탓도 있어 환갑인 사람보고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도 어느정도 보이는데 1980년대에 48세(세는나이 49살) 정도의 사람에게 아무도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지 않고 아저씨, 아줌마라 부른 것을 감안하면 사실 요즘의 환갑은 아저씨, 아줌마 정도이다.[28] 현재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80세 정도지만, 지금도 77세면 남자는 51%, 여자는 38% 정도 사망해서 절반 가까이 사망한 탓인지 희수여도 충분히 장수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남는 나이다.[29] 고려 왕 34명 중 환갑을 넘긴 왕은 태조, 문종, 명종, 강종, 고종, 충렬왕 등 6명 (17.6%)이었고, 조선 왕 27명 중 환갑을 넘긴 왕이 태조, 정종, 광해군, 영조, 고종 등 5명 (18.5%)에 불과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나마 조선 왕비는 환갑을 넘긴 왕비가 37명 중 16명 (43.2%)이었다. 중국은 더 심해서 진시황부터 선통제까지 335명의 황제 중 36명만이 환갑을 넘겼다.[30] 2024년 기준 1904년생. 1881년생이 21세기에 처음으로 대환력을 맞았다.[31] 1926년 12월 25일~12월 31일생, 1929년 1월 1일~1월 7일생 포함.[32] 공교롭게도 동년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2012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었다.[33] 20대 시절에는 남자 170cm, 여자 158cm 정도였다.[34] 심지어 더 과거로 가면, 평균키가 더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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