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道岷
(? ~ ?)
1. 개요
남북조시대 북위의 인물. 선조는 낙랑군 수성현 출신이다.2. 생애
북위의 대장군[1] 태부 대사마 광양정후(廣陽靖侯)로, 유(幽)·영(營) 2주 자사를 지냈다.3. 가족관계
- 처: 한씨
- 딸: 급사군부인 왕씨
- 사위: 원원평
- 외손자: 원서
- 딸: 급사군부인 한씨
- 사위: 원빈지
낙랑 왕씨로 전연의 의동삼사 무읍공 왕파의 5세손이다.
왕도민은 익(翼)·제(齊) 2주 자사 연군강공(燕郡康公)을 지낸 창려군 사람(昌黎人) 한기린(韓麒麟)[2]의 딸에게 장가들어 적어도 세 명의 자녀를 뒀다. 첫째는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없고, 한씨 묘지명에 따르면 한씨는 차녀, 왕씨 묘지명에 따르면 왕씨는 삼녀다. 그런데 두 묘지명에 기록된 생몰년을 따지면 한씨는 연창 2년(513)에 32세의 나이로 죽으니 482년생인데, 그 동생이 되는 왕씨는 영평 2년(509)에 30세의 나이로 죽으니 480년생이라 한씨보다 나이가 많다. 두 딸은 모두 북위의 황족과 결혼했다.
왕씨는 태무제의 아들 탁발휴(拓跋休)의 삼남 원원평과 결혼했다. 원원평은 살인강도를 저지르는 인간쓰레기로 선무제와 그 이후 섭정 선무영황후 호씨 때는 차마 황족을 죽일 수 없어 갇혀 살아야 했다. 원원평은 가정폭력도 서슴치 않았으니, 왕씨를 자녀들 앞에서 발가벗겼으며 처제를 강간하기도 해 왕도민의 처 한씨는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고 『북사』와 『위서』는 전한다. 결국 원원평은 효창 연간(효명제 시기)에 교형을 당한다. 『위서』에 따르면 원원평에게 원서(元緒)라는 아들이 있었으니 왕씨 소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씨는 북위 안락왕 원전의 삼남과 결혼했다. 안락왕은 문성제의 차남 탁발장락(拓跋長樂)과 그 후손에게 계승된 왕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