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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6:13

왕미(조선)

王亹
왕미
성씨 왕(王)
미(亹)
생몰기간 ?[1] ~ ?
국적 고려조선
1. 개요2. 행적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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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말선초의 인물로 동양군의 11세손(10대손)이다. 원래 이름은 왕흥덕(王興德)이었다.#

2. 행적

1377년 진사시 십운시 3등(三等) 2위로 합격했다. 이후 조선 건국 전까지 어느 관직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태조 때 교서감을 지냈다고 기록되어있다. 태조 때 멀쩡히 관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씨 몰살의 대상이 아니었던 듯하다.

개성 왕씨 족보에서는 왕씨들이 모두 몰살당하자 어머니의 성씨로 바꾸고 충주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후 별 탈없이 살고 있었는데, 이웃들과 놀다가 성씨가 윤씨가 아닌 왕씨로 밝혀지자 태종 이방원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마침 이방원의 꿈에 태조 왕건이 나와 왕씨들을 함부로 죽인 것을 질책하자 이방원은 이것에 크게 뉘우쳐 왕미는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태조 왕건의 후예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고, 왕미 또한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왕미의 후손은 개성 왕씨 절도사공파, 세마공파, 부사공파, 병사공파, 참판공파, 시정공파를 이루고 있고, 왕미의 형제 왕흥의 후손은 판서공파를 이루고 있다. 이 7개 파를 통틀어 동양군파라 한다.

3. 가족관계


형제로는 왕흥이 있는데, 개성 왕씨 족보에는 일단 왕미가 형으로 등재되어있지만 실제로 누가 형인지는 알 수 없다. 자세한 사항은 왕흥 문서를 볼 것.


[1] 개성 왕씨 족보에는 1365년생으로 되어있지만 형 또는 동생인 왕흥의 딸인 선비 왕씨가 1385년에 이미 결혼에 가능한 나이가 되었으므로 타당하지 않다.[2] 윤승경(尹承慶)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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