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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王斌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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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자 왕장의 아들, 왕단의 아버지, 왕영의 오빠로 헌제의 외삼촌. 기주 조국 사람.2. 생애
190년에 동탁이 조정의 정권을 장악한 후에 헌제가 어머니의 일족들을 찾았을 때 왕빈은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오면서 저택과 농지를 하사받아 봉거도위로 임명되었으며, 이각과 곽사 등이 조정을 정권을 장악한 후인 194년에 헌제가 관례를 치르면서 관리들이 상주해 장추궁을 세우자고 할 때 어머니 왕영이 죽은 것에 대해 예의와 규범을 제대로 다하지 못해 탄식하지 못하는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이에 담당 관리들이 상주해 왕영을 영회황후로 추존하면서 문소릉에 다시 장사를 지내면서 의례는 경릉, 공릉 두 능의 예를 따르면서 광록대부에게 지절을 주어 보내 사공을 대행해 옥새와 인수를 받들게 했는데, 이 때 왕빈은 흙을 덮었다.
흙을 덮고 헌제에게 가자 집금오로 승진하면서 도정후에 봉해져 500호의 식읍을 받았으며, 이후 병사해 전장군으로 추증되어 인끈을 내리면서 알자를 보내 장례를 살펴 치르게 했다.
3.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왕미인이 독살당하자 서량으로 피난해 한수의 보호를 받았고 유성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낙양으로 향하며, 흑산적의 난 때 유성이 역모 혐의를 받자 혐의를 풀기 위해 낙양으로 향했다. 황제에게 접근하기 전에 하진에게 잡힐 것을 우려한 유성과 수양산에서 만났는데, 자신의 친분을 생각해 서량에 가서 한수에 의탁하는 것을 권유해보기도 했다.이후 사도가 되었고 유성이 태학 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을 유성이 설득해 항복시킨 한수가 양주에서 반란이 일어나 반란군에 가담한 사태가 일어났는데, 하진이 이를 이용해 태학 개혁을 무산시키고 유성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지만 왕단이 하진에게 접촉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유성을 여러 차례 도와주다가 유성과 하진이 권력 다툼을 벌이자 외조카를 지키기 위해 영제의 편에 서서 유성이 조서 사칭 혐의로 체포되자 그를 꾸짖으며, 동탁이 낙양으로 군사를 이끌고 와 정권을 잡자 관직을 잃고 고향인 한단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