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王安節, ?~1275남송의 무장으로, 왕견의 아들이다.
2. 생애
어려서부터 아버지 왕견을 따라 합주에서 몽골군을 막아냈다. 그 공으로 관직에 오른다. 그는 송 도종 시기 동남제칠부장군이 되었다.1275년 정월 강릉에 주둔했다. 그 해 2월, 가사도가 이끄는 군대가 정가주에서 궤멸하고 원나라의 군대는 장강을 따라 여러 주현을 함락시키자 왕안절은 임안으로 돌아와 절강 서부의 병마부도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해 3월, 상주와 평강부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왕안절은 군대를 궤멸시키고 평강에 들어가 장세걸(張世杰)의 군대와 만나 원나라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도통제 유사용은 상주를 수복한 후, 왕안절(王安節)과 장첨(張詹)을 상주(常州)로 보내 지주(知州)의 요은(姚訔), 통판 진소 등과 함께 상주를 지키며 동진하는 원나라의 군사들을 몇 달 동안 막아냈다.
11월, 바얀이 직접 창주로 가서 투항을 권하나 거절당한 후, 직접 작전을 감독했다. 문천상이 보낸 윤옥과 마사룡이 이끄는 지원군은 혈전 끝에 전사했다. 창주는 용병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수십 배의 원나라의 군사들과 맞서 싸웠다. 바얀이 친히 이끄는 군사들이 먼저 성두까지 쳐들어오자 창주가 함락되고, 요은, 진소 등이 용감하게 전사했으며, 유사용이 포위를 뚫었고, 왕안절이 패잔병들을 이끌고 시가전을 벌이다가 팔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항복을 거부하여 살해당했다.
이 때 이름을 묻는 자가 있었는데, 왕안절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는 왕견의 아들 왕안절이다!
말을 마치고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