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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0:29:53

요제프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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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보지크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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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C0E11 0%, #e10f14 20%, #e10f14 80%, #CC0E11)"<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10f14> 파일: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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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d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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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벌라주 주자크 109회 2007.06.02 2022.11.20
2 가보르 키라이 107회 1998.03.25 2016.11.15
3 요제프 보지크 101회 1947.08.17 1962.04.18
}}}}}}}}}}}}}}} ||
헝가리의 前 축구선수
파일:bozsik-jozsef.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보지크 요제프[1]
Bozsik József
출생 1925년 11월 18일
헝가리 왕국 키슈페슈트[2]
사망 1978년 5월 31일 (향년 52세)
헝가리 인민 공화국 부다페스트
국적
[[헝가리|]][[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키슈페슈트 FC (1936~1943 / 유스)
부더페슈티 혼베드 SE[3] (1943~1962)
감독 부더페슈티 혼베드 SE (1966~1967)
헝가리 대표팀 (1974)
국가대표 101경기 11골 (헝가리 / 1947~1962)

1. 개요2. 어린 시절3. 선수 시절
3.1. 클럽 경력3.2. 국가대표 경력
4. 사망5. 플레이 스타일6. 수상 경력
6.1. 우승6.2. 개인 수상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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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 출신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1950년대 헝가리 대표팀이 매직 마자르로 전성기를 누릴 당시의 팀을 이끈 전술의 중추였다.

2. 어린 시절

보직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보직은 어릴 때 할머니에게 '쿠쿠'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그 지역에서 축구를 하는데 그 당시 왼발을 잘 쓰기로 소문난 친구와 친하게 지냈고 같이 축구를 한다. 그 친구는 바로 헝가리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페렌츠 푸스카스. 키스페스트 유스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푸스카스와 함께 1군 프로팀에서 데뷔한다.

3. 선수 시절

3.1. 클럽 경력

보직은 1943년 17세 나이에 첫 데뷔를 한 그는 몇년만에 주전자리를 차지했고 대활약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오랜 절친 페렌츠 푸스카스의 합류로 키스페스트는 더욱 더 강력한 헝가리팀이 되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원래 이름은 키스페스트였다. 그러나 1949년 헝가리국방 정부에 의해 인수되었고 팀도 육군팀으로 변경되었다. 군 정부의 산하클럽이 되자마자 리그 2연패를 달성한다. 이후 부다페스트 혼베드로 팀 이름을 변경하고 졸탄 치보르, 산도르 코츠시스등 매직마자르의 핵심 멤버들도 영입되었다. 이후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는 1955년 리그 5회 우승을 차지했으나, 1956년 헝가리 혁명때문에 보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해외로 도피했으며, 부다페스트 혼베드 FC의 전력은 약화되었다.보직은 은퇴할 때까지 리그 우승을 못하지만, 1959년 미트로프컵에서 MTK 헝가리아를 격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후 보직은 1962년에 은퇴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1947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보직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금메달을 획득한다.

1954년 당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들은 기가 찰 정도로 역대급 스쿼드였다.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페렌츠 푸스카스산도르 코츠시스, 당대 최고의 윙어 졸탄 치보르 등과 함께 당시 헝가리 대표팀을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을 9:0으로 제압하는 등 다른 팀들을 가볍게 이기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당시 결승 상대는 프리츠 발터가 지키던 서독.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서독 대표팀이 줄리메 컵을 들어올렸지만 당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가장 아름다운 경기력을 보여주어 매직 마자르라 불리며 널리 칭송받았다.

4. 사망

1978년 5월 31일 부다페스트에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심부전이다.

5. 플레이 스타일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을 처음 알린 인물로 최초로 공격적인 하프백[4]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에른스트 오크비르크와 같이 오늘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시초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활동량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볼컨트롤이나 드리블이 뛰어나 공격 전개시에도 쉽게 볼을 뺐기지 않았다. 패스 정확도와 시야가 좋아서 공격진에게 한번에 길게주는 중장거리 패스나 강하게 깔리는 쓰루패스를 구사하는데도 탁월했다. 활동량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수비능력도 다소 부족했다. 때문에 이 역시도 그의 단점이 될 수 있었기 에 그의 더블 볼란치 짝인 자카리아스가 한 발짝씩이라도 빠르게 움직여 이를 커버했다.

6. 수상 경력

6.1. 우승

6.2. 개인 수상

7. 여담



[1]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ˈboʒik ˈjoːʒɛf\]. 어말과 유성 자음 앞의 k와 p는 '으'를 붙여 적는다.[2] 현재는 부다페스트의 행정구[3] 보지크가 있는 동안 팀명은 3번 바뀌었다. 1943~1944: 키슈페슈트 FC, 1944~1949.12.31: 키슈페슈티 AC, 1950.01.01~1962: 부더페슈티 혼베드 SE.[4] 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