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 테이즈웰 패튼 Waller Tazewell Patton | |
출생 | 1835년 7월 15일 |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 | |
사망 | 1863년 7월 21일 (향년 28세)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 |
복무 | 아메리카 연합군 |
최종 계급 | 아메리카 연합군 중령 |
복무 기간 | 1861~1864(남부 육군) |
학력 | 버지니아 군사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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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에서 남부의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존 M. 패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리치먼드에서 성장했다. 1852년 버지니아 군사대학을 졸업했고 민병대를 지휘했다. 한편으로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버지니아주 컬페퍼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남북 전쟁당시 남군소속이였으며 소령으로 제7버지니아보병연대의 대대장으로 참가했다. 1862년 전투인 2차 매너서스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다. 하지만 회복하고 여러 전투에 참가해 중령으로 진급했다. 1863년 남부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거부하고 군에 집중했다.
게티즈버그 전투당시 7월 1일 이후로 남군은 세메리티 언덕을 차지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반면 북군은 피해를 입었지만 언덕을 확보하고 빠르게 보충하고 재편성해 기세가 올라있던 상황이였다. 이에 로버트 E. 리는 조지 피켓에게 돌격을 명령했고[1] 당시 패튼은 우익에서 돌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군이 3면을 둘러싸고 언덕을 활용해 총과 화포로 남군을 거의 학살했으며 패튼 역시 북군이 쏜 포탄 파편에 턱의 일부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다. 후송되었으나 3주 뒤 사망했다.
이후 사망한 형 조지 S. 패튼 시니어와 함께 스톤월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작은아들로 캘리포니아주 샌마리노 시장을 역임한 조지 S. 패튼이 있었으며[2] 작은손자로 조지 S. 패튼[3], 작은증손자로 조지 패튼 4세가 있다. 아들을 제외한 손자, 증손자는 군인으로 공을 세워 장성까지 올랐다.
- 당시 사촌이였던 루이스 B. 윌리엄스도 피켓의 돌격당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