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패튼 4세[1] George Patton IV | |
본명 | 조지 스미스 패튼 4세 George Smith Patton IV |
출생 | 1923년 12월 24일 |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 |
사망 | 2004년 6월 27일 (향년 80세) |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우스해밀턴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946~1980 |
학력 | 더힐 스쿨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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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조지 S. 패튼의 아들로 태어나 1946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서독에서 복무를 시작했으며 1952년 기갑으로 전과했고 제1보병사단 63전차대대 소대장이 되었다. 1953년 2월 한국으로 건너와 제40보병사단 140전차대대 A중대장으로 북한군, 중공군과 전투를 치러 은성훈장,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1954년 대위로 진급했고 해군사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임명되었다. 1962~63년 당시 중령이였고 베트남 군사지원사령부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1967년 제1기갑사단 81기갑연대 2대대장으로 임명되어 북베트남군과 전투를 치러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고 주베트남미군 작전기획참모로 있다가 68년 대령으로 진급해 제11기갑수색연대장이 되었다. 헬기를 통해 지휘하면 3번을 격추당했으나 무사히 임무수행해 수훈비행십자장[2]을 수여받았다.
1970년 귀국해 준장으로 진급했고 1975년 소장으로 진급하고 제2기갑사단장으로 부임했다.[3] 서독의 제7군단 소속으로 에르빈 롬멜의 아들이자 슈투트가르트 시장이 되는 만프레드 롬멜과 만났고 오랜기간 친분을 유지했다. 1980년 퇴역했으며 농부로 살아가다가 2004년 사망했다.
3. 여담
- 아버지와 비슷한 체형, 외모를 가졌으나 매우 포악했던 아버지와 달리 성격은 정반대여서 오히려 덕장같은 스타일이였다고 한다.
- 아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모두 아버지와 같은 군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특히 1965년생 막내아들인 벤저민 패튼은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가 되었다.
[1] 출생명은 조지 패튼 3세였으나 아버지 사후 증조할아버지인 조지 S. 패튼 시니어의 호칭을 이어받기 위해 4세로 개명했다. 할아버지인 조지 S. 패튼이 아버지 시니어를 기리기 위해 주니어를 빼버리고 조지 S. 패튼으로 개명해 호칭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2] 공군십자장과 다르며 육해공군 상관없이 비행임무를 수행한자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이다. 1918년부터 제정되었으며 훈공장보다 아래이며 각 군 메달보다 상위의 위치이다.[3] 부자가 같은 사단에서 사단장으로 복무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