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킬러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윌리 킬러 | ||
헌액 연도 | 1939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75.55% (4회) |
1897, 9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 |||||
제스 버켓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1] | → | 윌리 킬러 (볼티모어 오리올스) | → | 에드 델라헌티 (필라델피아 필리스[2])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32448> | 뉴욕 양키스 역대 주장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03~1905 | 1906~1907 | 1908~1909 | 1910~1912 | 1913 |
클락 그리피스 | 키드 엘버펠드 | 윌리 킬러 | 할 체이스 | 프랭크 찬스 | |
<rowcolor=#fff> 1914~1921 | 1922 | 1922~1925 | 1935~1939 | 1976~1979 | |
로저 페킨포 | 베이브 루스 | 에버렛 스캇 | 루 게릭 | 서먼 먼슨 | |
<rowcolor=#fff> 1982~1984 | 1986~1988 | 1991~1995 | 2003~2014 | 2023~ | |
그렉 네틀스 | 윌리 랜돌프 론 기드리 | 돈 매팅리 | 데릭 지터 | 애런 저지 | |
출처 : # | }}}}}}}}} |
}}} ||
윌리엄 헨리 킬러 William Henry Keeler | |
출생 | 1872년 3월 3일 |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사망 | 1923년 1월 1일 (향년 50세) |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우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신체 | 163cm, 63kg |
소속팀 | 뉴욕 자이언츠 (1892~1893) 브루클린 그룸스 (1893) 볼티모어 오리올스[3] (1894~1898) 브루클린 슈퍼배스 (1899~1902) 뉴욕 하이랜더스 (1903~1909) 뉴욕 자이언츠 (1910) |
[clearfix]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전설의 4할 타자 중 1명으로, 189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레전드 타자다. 키가 163cm[4]로 매우 작아서 Wee Willie[5]라는 별명이 붙었다.2. 선수 시절
1872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윌리 킬러는 1892년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데뷔 초에는 팀의 백업 멤버로서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으나 189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위에서 말했듯이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에 입단하면서 팀의 주전으로 뛰게 된다.풀타임 첫 해,윌리 킬러는 타율 .371 219안타 94타점을 기록했다.윌리 킬러의 활약 덕에 전 시즌까지만 해도 8위에 그쳤던 오리올스는 창단 이후 첫 리그우승을 치지했다.이후로도 윌리 킬러는 꾸준히 활약하며 오리올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거,1897년과 1898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1897년에는 타율 .424로[6] 4할 타자가 되는 등 맹활약했다.또한 1896년 최종전과 1897시즌을 걸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속 안타 2위이자 아직도 내셔널리그 1위인 45경기 연속안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 조 디마지오가 경신하기 전까지 계속 최고기록으로 유지됐으며 디마지오가 이를 경신할때 "디마지오가 윌리 킬러 기록을 깼다"는 게 미국내 큰 화제였다.
1899년 브루클린 슈퍼배스로 이적한 윌리 킬러는 1901년까지 200안타를 치면서 메이저리그 130년간 전무후무한 8년 연속 200안타를[8] 기록했다.이후 1903년 볼티모어 오리올스[9]로 이적해 1906년까지 3할을 기록하며 15년 연속 3할을 치며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하지만 1907년 개인 최저 타율인 .234를 기록하는 등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다가 1910년을 마지막으로 3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던 윌리 킬러는 1923년 1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윌리 킬러는 죽은 뒤인 기자단 투표를 통해 1939년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윌리 킬러 | 20 | 168 | 189 | 49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26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윌리 킬러 | 54.0 | 36.2 | 45.1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3.2 | 43.0 | 58.1 |
5. 관련 문서
[1] 사이 영이 9년간 뛰었던 팀으로 현재는 사라진 내셔널리그 야구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참고로 제스 버켓도 이 시즌에 4할 타자다. 그리고 제스 버켓은 사이 영과 함께 투타에서 각각 팀을 이끌던 리더이자 위대한 타자였다.[2] 이 사람도 4할 타자. 원래 4할 타자는 내셔널 리그 원년 1876년의 로스 반스 이후 전혀 안 나오던 희귀 기록(캡 앤슨이 .399를 기록한 적은 있다.)인데, 이 시기에 희한하게 딱 1894~1899년까지 내셔널 리그에서 4할 타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아메리칸 리그 원년의 냅 라조이가 1901년 기록한 뒤, 타이 콥과 조 잭슨이 함께 4할을 기록할 때까지 한 동안 안 나왔다. 이후 1930년 내셔널리그의 빌 테리가 4할을 기록한 후, 1941년 누구나 다 아는 출루의 신이 4할을 기록한 후 80년 간 나오지 않고 있다.[3]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4] 사실 미국은 체격 대성장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중반에도 국민 신장이 많이 커지지 않은 나라였다. 당시 미국인 평균 키는 현재 한국인 평균키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니 운동선수임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시대의 일반인치고도 상당히 작았다. 대충 대한민국의 김지찬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5] Wee는 작은,조그마한 이라는 뜻이다. 똑같은 이유로 메이저리그 후배 피 위 리즈도 본명과 다른 별명을 선수명으로 사용하였다. 대신 피 위 리즈는 운동선수 치고 어깨가 넓지 않은 왜소한 체형이긴 해도 키가 170대 후반이었고, 어릴때 작았다는 이유로 생긴 별명이 이어진 것이었다.[6] 메이저리그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는 1894년 휴 더피의 4할 4푼. 2위는 1876년 로스 반스의 4할3푼2리.[7] 1위는 1941년 아메리칸 리그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가 기록한 56경기 연속 안타.[8] 100여년의 긴 세월을 거져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소속으로 2001년~2009년 9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할때까지 계속 최고 기록이었다. 이치로는 2010년에도 200안타이상을 기록해 현재 MLB기록은 이치로의 10년연속 200안타이다.[9] 현 뉴욕 양키스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