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16:45:08

유금필(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1. 개요2. 능력3. 작중 행적4. 기타

1. 개요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유금필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고려의 장군으로, 패서 호족의 일원인 평산 유씨(平山庾氏) 출신이다. 왕건의 제9부인인 동양원부인 유씨의 아버지이다.[1]

2. 능력

후삼국시대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전략부터 전술까지 다방면에서 능통하다.

특히 지형과 기후, 적의 심리를 읽는 것에 매우 능하여 견훤이 음력 8월에 고려를 기습할 것을 예측하거나 왕건을 비롯한 모두가 견훤이 수군으로 고려에 우세를 점할 리 없다고 방심하는 동안 예성강 전투가 일어날 것임을 예측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홍술의 죽음을 막으려던 임연우를 저지하여 홍술의 죽음을 방관하기도 했다. 작중 묘사를 보면 적의 속셈을 간파하는 능력에 한해서는 왕건조차 능가해서 왕건이 몇 차례 삽질하는 동안 혼자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기도 했다.

굉장히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고 있어서 유금필의 무술 실력을 본 임연우는 저래서 호족들이 유금필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쫄았던 거냐고 혀를 내둘렀다.

적보다 확고한 수적 우세를 확보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황룡사 장기 대결 계책을 임연우가 내놓았을 때 5명씩 후보를 선출할 때 황룡사는 800명, 개경은 20만 명 사이에서 예선전을 벌여 5명의 후보를 선발하자 20만 대 800만큼 확고한 승리의 공식이 있겠냐며 임연우의 계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균여 혼자서 5명을 압살해서 허무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강직하고 의리가 강한 성격이라 왕건이 한 번 자신을 버려 숙청당했다 복귀해서 주위에서 유금필이 배신할까 봐 걱정하는 와중에도 별 불만을 표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바쳤다.

3. 작중 행적

고려 초기 최고의 용장이자, 왕건의 장인. 평주의 호족이기도 하나 가문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 염상과 같이 왕건의 명을 받아 북방 국경지대에 성을 쌓고 고려에 협조하는 말갈족들로 기병부대를 만들기 위해 파견된다. 거중기의 개발 소식을 듣고 염상과 같이 서경으로 찾아오나, 친분을 쌓기 위해 접근하는 임연객을 립서비스로만 응대하며, 왕위 계승에 대해서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있다.

협조를 얻은 말갈족들과 언어 외의 소통문제로 곤란해하는데, 이를 듣게 된 연우가 오빠를 통해 그래프를 만들어서 해결해주며, 그래프를 가져온 임연객에게[2] 여태까지 하던 립서비스와는 달리 저녁식사까지 같이하며 추후 개경에 찾아오게 되면 방문을 할 때 최우선적으로 받아주게 되는 명첩을 제공한다.

본인과 가문이 왕위 계승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딸과 본인에게 주는 선물을 전부 거절하고 있다 한다. 44화에서 딸의 생일잔치 때 연우가 준 선물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나 입장상 받지는 않고, 추후 딸을 통해 거래를 제안한다. 연우가 자신이 생각하던 거보다 물품을 훨씬 일찍 가져오는 것을 보고 감탄해서 왕건에게 간청하여 연우를 탕정군에 같이 데려가게 해달라 한다.

직후 대면하면서 공산 전투의 패배를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면서 왕건이 이번 원정을 실패할 거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으며, 같이 가서 연우의 아버지인 임희를 유금필의 휘하로 배속시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암시를 연우에게 준다. 탕정군으로 가서 성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연우에게 가까운 시일 내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견훤의 작전을 간파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어 왕건과 다른 대호족들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도인이 도와줬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군략은 뛰어나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군인으로서 관여하고 싶지 않아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면에서 약한 건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희랑이 위기에 처해서 어찌하면 좋겠냐는 왕건의 질문에는 나중에 견훤을 이겨서 희랑을 다시 밀어주면 된다는 답을 한다.

82화에서 연우를 만나 견훤이 언제 쳐들어올지에 대해 논의하다가 연우의 미래 지식으로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말하자 "연우가 병법이 깊다"고 착각(?)해서 감탄한다.[3] 그리고 여기서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병법같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일장연설을 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러나 "홍술을 구원해야 한다"는 연우에게 "지금 고려는 홍술을 구원할 방법과 여력이 없다"고 한 뒤에 "지금 견훤이 하는 공세가 훗날 화가 될 거다"라고 말한 뒤에, 더 이상 공식석상에서 말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계절이 지나 결전을 위해 모인 회의에서 "퇴로를 확보하고 진군하자"는 호족들의 주장에 "견훤이 요 수년간 잦은 군사작전을 일으켜 병력들의 체력소모가 크다"는 점을 내밀어 "전 병력을 공세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비난을 받으며, 연우가 자신의 주장을 더 강경하게 지원해주자 이를 찬성하며, 부인을 사지에 보낼 수 없는 왕무가 자신도 같이 가겠다 하자, "본대에 남아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냉정해지라"고 말한다. 회의가 끝나고 자신은 선봉을 맡게 되었고, 연우가 고창성[4]으로 떠나게 되자 배웅을 나오면서, 자신의 작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준거에 감사를 표하며 고창성에서 뵙겠다 말하고 떠난다.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후 연우에게 왜 성 주변이 진창이 되었냐 물어보고, 연우가 소금을 뿌려서 그렇다 하자, 좋은 방법이긴 한데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이라고 평한다. 왕건이 복속을 청하는 호족들을 받아들이는 와중에 다른 장군들과 같이 견훤에게 빼앗겻던 땅들을 되찾으면서 병력을 배치하는 일을 한다.

연우가 임희에게 대장군에 대해서 묻자 임희의 말로는 고창에서 자신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도 유금필이 없었다면 패했을 것이고 유금필의 돌격에 견훤이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몸을 떤다. 수 년간 유금필을 봤지만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유금필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게 되었고, 유금필이 말을 걸어도 주인공을 제외하면 다들 굽신거리기만 한다. 군사회의에서 유금필을 비난하던 황보제공도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 피할 정도. 그러나 연우는 유금필이 큰 공을 세우고도 가까운 미래에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아 유배를 가게 될 예정인 것을 알기에 안타까워한다.

해가 지나 고창 전투 당시 자신에게 분노가 쌓인 대호족들의 정치공세를 받아 서라벌에 간 왕건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며 버텨보나, 왕건이 자신을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본인 스스로 사직하고 개경을 떠나는 형식으로 곡도로 떠나게 된다. 왕건의 명을 받아 찾아온 연우와 최언위와 얘기를 나누며, 이 와중에 내년에 있을 견훤의 바다를 통한 기습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기회 삼아 개경에 복귀할 생각을 연우에게 돌려서 말한다.

연우 또한 예성강 전투를 예측하여 왕건에게 몇 번 말을 했지만 이번에는 왕건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대비해야 할 것 같으며 이를 기회로 정계에 복귀하자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였고, 연우가 군자금으로 쓰라고 준 은병을 보고 잠깐 고민하지만 계획의 성공을 확실히 하기 위해 받아들이고 곡도로 떠난다. 이후 백제 수군이 예성강을 습격하자 곡도에서 그동안 기른 수군을 출진시켜 요격함으로써 공을 세웠고 개경으로 복귀한다.

직후 후백제군이 양동으로 서라벌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서라벌을 구하기 위해 파견되는데, 왕건은 원 역사에서도 고민 끝에 유금필을 보냈지만 본작에서는 유금필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임연우와 동행시키도록 한다. 임연우는 한창 왕무와의 연애감정 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이라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유금필 본인도 동행을 원해서 결국 같이 서라벌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80명의 기병만 이끌고 마상쌍검을 구사하며 백제군의 방어를 뚫고 연우와 함께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민심을 잡아놓는다.

마의태자를 비롯한 신라 진골들은 신라를 조금이나마 더 연명시키기 위해 유금필을 독립 세력으로 만들어 신라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유금필은 깔끔히 씹고 귀국길에 숨겨놓은 후백제군을 찾아내서 전멸시킨다. 이때 임연우가 왜 숙청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에 그렇게 충성하냐고 묻자 자신은 유년기 9주가 평화로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처럼 마음 편히 9주를 돌아다닐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왕건과 고려에 충성한다고 대답하였다.

마지막 결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을 보좌하였다.

통일 후에는 대놓고 정윤파로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임연우에게 신세 진 것이 많아서 공식석상에서 정윤파와 반정윤파, 중립파가 갈려서 자리에 앉을 때 동양원부인과 함께 정윤파의 자리에 앉기도 했다. 그러다 유긍달의 수국 게이트 때문에 동양원이 한 번 뒤집어지기도 했다.

941년 건강이 많이 약해졌고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연우는 왕건보다 유금필이 먼저 죽는 걸 알고 있었지만 유금필이 먼저 죽는 것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왕건도 솔직히 유금필이 자신보다 먼저 죽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면서 자신의 사후 왕무를 보필할 거라 생각해서 반정윤파를 방치했음을 임연우에게 실토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임연우는 유금필의 사망 시기를 계산하고 930년대 말에 수국 게이트를 터뜨려서 유긍달을 몰락시켰다.
“어느 방향으로 군사를 진격시킬지 어떤 전술을 쓸지는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윤비 마마께 드릴 조언이 있긴 합니다. 일전에 일리천 전투가 일어나기 전 폐하께서 삼한 땅의 병법 대가를 3명 뽑았는데 기억나십니까?”
“폐하께서는 대장군, 그리고 궁예와 견훤의 군재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 임연우
“저는 폐하의 그 말씀에 사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궁예, 견훤 그리고 저보다 더 뛰어난 병법의 대가가 삼한 땅에 있습니다. 바로 폐하이십니다.
이건 폐하께 아첨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제가 곧 죽을 텐데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합니다.
일리천에서 폐하께서는 10만 대군을 모아서 백제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전국의 호족들을 움직여 일리천에 오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일리천에서 엄청난 대군이 싸웠음에도 사상자의 수는 적은 편이었습니다.
정윤비 마마. 훗날 거란과 싸우게 될 때 반드시 일리천의 일을 생각하십시오.
정세를 살펴보면 거란족의 숫자가 지금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 연운 16주의 식량을 바탕으로 그들의 호구가 크게 늘 것입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중원에서 나서서 거란의 힘을 분산시키고, 여진의 무리들과 진정 힘을 합칠 수 있다면 거란을 꺾을 수 있습니다.
여진의 기마술은 어떤 부분에서는 거란보다 뛰어납니다. 일리천에서 폐하께서 어떻게든 여러 호족들을 전장에 나오게 만든 것처럼 여진족들을 끌어들이십시오. 폐하께서 호족들의 마음을 조종했던 것처럼 여진족들의 마음을 조종해야 합니다.
유학자들처럼 단순히 덕을 베풀라는 말이 아닙니다. 덕을 베푸는 것은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 겁을 주든 속이든 해서 어떻게든 우리 뜻대로 그들을 움직이는 것이 병법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중하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포진을 펼칠지는 그다음 순위입니다.
또한 박술희나 박수경, 황보금산 등 싸움에 능한 장수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포진 같은 것은 그들의 재주를 빌리십시오. 정윤 전하께서도 정윤비 마마가 그 뜻을 펼칠 수 있게 잘 도와주십시오.”
죽기 전 왕건에게 자신이 후삼국시대 여러 명장들을 만났지만 그 누구도 일리천 전투의 왕건마냥 많은 세력을 끌어모아 대군을 편성할 수 없었다며 이를 가능케 한 왕건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명장이라 말하고, 마지막으로 임연우와 만났을 때 북벌 계획을 예측하고 있었다며 북벌에 대한 몇몇 조언을 하면서 임연우에게 미래를 맡겼다.

4. 기타

임연우와는 꽤 죽이 잘 맞아서 군사 문제를 비롯해서 이래저래 따로 만나 대화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예 전투에서 동행하기도 했다. 왕무도 군사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언급되지만 죽기 전 왕무에게 북벌을 할 거면 임연우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을 보아 단순히 군사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의 전략전술은 임연우를 더 높이 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임연우도 철저한 숟가락 얹기만은 아니라서 본인 자체적인 식견도 꽤 있다는 암시가 나오기 때문에 유금필이 단순히 착각한 건 아니다.

임연우는 유금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숟가락 얹기를 한 거긴 하지만 유금필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 딸인 동양원부인과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중립이었던 원 역사와 달리 나중에는 정윤파에 들어가지만, 왕건보다 유금필이 먼저 노환으로 죽는 걸 알고 있어서 임연우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사실 유금필은 엄밀히 말하면 왕무의 편이라기보다는 제자(?)인 임연우의 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5] 다만 유금필의 평산 유씨는 유금필의 군사적 능력과 별개로 호족으로서는 그리 강대하지 못해 대호족들과 직접 대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889년 원종·애노의 난을 기점으로 신라 9주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는데 어린 시절 평화롭게 여행 다닐 수 있던 때가 그리웠다는 것을 보아 원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원 역사에서는 동양원부인이 효목태자효은태자라는 아들들을 낳았는데 본작에서는 언급조차 없다. 다만 왕건의 자식들은 원 역사와 동일하다고 하는 만큼 작가가 그냥 생략했을 가능성이 높다.


[1] 단 제9부인이라는 것은 부인들의 서열 순이지 혼인 순서가 아니다. 왕건의 부인들은 혼인 순서와 서열 순서가 다른 경우가 많다.[2] 여기서 임연객이 여동생이 해서 자신을 통해서 전달해주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본인이 고안할 능력도 없는데 그걸 했다고 말하면 추후에 감당 못할 일이 닥칠 거라는 거를 알아서.[3] 다만 유금필 사후 거란 북벌 당시 연우가 한 행동을 보면 실제로 군략에 아예 일자무식은 아니다.[4]경상북도 안동시. 고창 전투 참조.[5] 본작의 유금필뿐만 아니라 본작 정윤파의 주요 인물들은 함규 같은 인물들을 제외하면 임연우와의 친분으로 정윤파에 속한 사람이 많다. 그 외에는 왕무가 단순히 장남이라서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