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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4:33:26

유성기업

파일:유성기업ci.png
정식 명칭 유성기업 주식회사
영문 명칭 Yoosung Enterprise Co., Ltd
설립일 1960년 3월 18일
설립자 유홍우[1]
대표이사 유현석
업종명 자동차 신품 부품 제조업
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아산밸리동로 22 (운용리)
상장유무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88년 ~ 현재)
종목코드 002920
웹사이트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기업정신4. 상징 노래5. 역대 임원6. 계열사 목록7. 노동조합 현황
7.1. 노사분규 사태 (2011~2021)
8.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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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자동차 부품 회사. 주로 엔진 부품을 제조하며 현대자동차그룹의 1차 벤더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풍산그룹처럼 오너 가문이 풍산 류씨이기도 하다.

2. 역사

설립자 보덕 유홍우(1922~2021)가 자동차 부품과 인연을 맺은 것은 휴전 후인 1953년,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서울 종로에서 자동차 부품 판매상인 '동명상회'를 차린 데서 기인한다. 1960년 서울 영등포구 오류동 163-1에 '유성기계공업'을 세우고 1963년 현 명칭으로 변경 후, 1965년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시범공장으로 지정됐다. 1966년 주조공장 증축 후 전사적 품질관리제도(TQC)를 도입했으며, 같은 해 첫 자회사 한국프러그공업을 세웠다. 1974년 상공부로부터 수출입업자 허가를 받고 이듬해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507-2[2]에 새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그리로 옮겼다. 1978년 상공부로부터 자동차부품 전문공장으로 지정받고 1979년 국내 최초로 스테인레스 재질의 '3피스 오일링'을 개발했다.

1982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8-20번지에 서울지점을 세우고 1984년 영국 AE PLC 사와 합작해 '동서공업'을 세웠고, 1985년 공업진흥청으로부터 실린더 라이너 품질관리 1등급 사정을 받기도 했다. 1987년 기술연구소를 세우고 1988년 송내동 385-6에 부천 제2공장을 세운 뒤, 유홍우 사장이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장남 유시영 상무를 사장으로 승진시켜 2세 경영의 기반을 다졌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다. 1991년 공진청으로부터 품질관리 선도기업으로 지정된 후 이듬해 실린더라이너 공장을 새로 지어진 충북 영동공장으로 이전했고, 부천 2공장의 설비도 그쪽으로 이전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기업부설 기술연구소로 인정받고 병무청으로부터 공업분야 특례업체로 지정받았다. 1994년에는 대형 링 공장을 대구공장으로 옮기고 울산에 첫 물류센터를 세웠으며, 1995년 미국 히치너로부터 진공박육조립기술을 도입하고 일본 닛단펌프와 합작해 신화정밀을 세웠다. 1996년 LSVAC 설비를 가동한 뒤 이듬해 영국 T&N 및 일본 데이코쿠 피스톤링과 기술제휴를 맺었다.

2000년에 부천공장 부지를 중동현대모닝사이드연합주택조합에 매각한 뒤[3] 생산설비를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의 새 공장으로 이전하고 2001년 A/COMP 라인을 남동공장으로 옮겼으며, 2002년 산업자원부로부터 부품/소재전문기업으로 지정됐다. 2005년 미국 크라이슬러 사의 납품업체로 지정된 후 2010년 충북 음성공장을 세워 자회사 Y&T파워텍에 임대했다. 2018년 유홍우 명예회장의 손자 유현석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3세 경영체제가 확립됐다.

3. 기업정신

우리 회사 기업발전을 통하여 사회에 봉사하자: 화합정진, 고객제일, 기술혁신[4]
정도경영, 미래지향

4. 상징 노래

작사는 윤석중, 작곡은 박시춘이 각각 맡았으며, 1980년에 제정됐다.
(1절)웃음 속에 일하는 유성 가족들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을 맞자

언제나 앞서가는 우리 솜씨를
세계에 자랑하자 나라 빛내자

유성 유성 우리는 희망가족

(2절)신의로 굳게 물친 유성 형제들
바르고 보람 있고 알차게 살자

나날이 늘어나는 우리 슬기로
잘 사는 나라 되자 행복을 심자

유성 유성 우리는 평화가족
나날이 새로워진 보다 나은 솜씨로
뜻 모아 봉사하는 끈기와 슬기

전진 전진 우리들은 전진 뿐이다
승리 승리 우리는 승리 뿐이다

앞서자 YPR 유성기업
받들자 YPR 유성기업

5. 역대 임원

6. 계열사 목록

7. 노동조합 현황

7.1. 노사분규 사태 (2011~2021)

위 공적들과 달리 이 기업이 유명한 이유는 2011년부터 10여년 동안 지속됐던 심각한 노사분규에 있었다. 그 악랄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이 기업의 자문을 맡았었다.

시발점은 2009년 임단협에서 2011년 1월 1일부터 주간연속 2교대 제도를[6] 시행하자는 노사의 합의로 파악된다. 이에 노사는 1년의 준비 기간을 뒀으나 2010년 말이 다 가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이 이를 묵살했다.

노조 측은 2011년 1월부터 넉 달간 11차례나 회사와 교섭을 진행했으나 회사는 이를 미루기만 했고, 5월 1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10일 뒤 노동위는 조정 중지를 결정했다. 이에 노조는 18일부터 2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진행하자 회사는 저녁 8시부터 아산공장에 직장폐쇄를 단행해서 용역 경비업체 'CJ시큐리티'[7] 및 본사 관리자들이 정문을 굳게 잠그고 노조원들의 출입을 봉쇄했다. 다음날엔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이 용역업체 직원의 차에 치여 1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5월 23일에는 영동공장에도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24일에는 경찰이 전의경 30개 중대 2,500여명을 투입해 조합원 500명 전원을 연행했다. 또한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은 이 파업에 외부 세력이 개입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회사도 생산라인을 재가동하며 노동자 선별복귀 원칙에 따라 직장폐쇄를 지속해 왔기에 조합원들은 비닐하우스까지 쳐가며 농성을 해왔고, 노조 측이 6~7월 내에 현장 일괄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8월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이 조정안을 내걸면서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했다.

2012년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의 창조컨설팅의 비밀문서 공개 및 국정감사 과정에서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에 노조 무력화 방안을 실행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당시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교대방식 개편에 대한 노사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속 하청인 유성기업이 먼저 타협했다는 괘씸죄인 것이다.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공개된 검찰 수사자료에 나와있다.) 그리고 회사측에서는 현대차, 창조컨설팅이라는 노무관련 기업과 같이 조직적인 노조 탄압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창조컨설팅 측은 노조[8]가 파업을 일으키기도 전부터 대량의 채증 장비를 도입하고 20여분의 부분파업에 직장폐쇄로 맞섰으며, 사측 입장만 대변하는 '유성기업 노동조합(2노조)'를 세우고 파업자들에게 선별복귀 원칙을 적용하여 해당 노조로 가입을 강제했다. 이 외에도 어용노조원들에 대한 단란주점에서의 향응 제공, 기존 노조원에게는 무리한 중징계를 내리고 어용노조원에게는 거의 전부 경징계를 내리는 차별대우, 도감청 장비 운용, 기존 노조 사무실 비품 훼손 및 절도, 기존 노조원들에 대한 고소/고발 남발 등의 전략을 사용해서 기존 노조를 파괴하려 했다.

이에 금속노조 등은 유시영 대표 등을 검찰에 고소했고, 홍종인 전 지회장이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는가 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등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은 이를 차일피일 미뤘고, 2013년에 이정훈 1노조 영동지회장이 고속도로 광고용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지만 2014년 1월 대전지방검찰청은 유 대표를 불기소 처분시켰고, 이에 노조가 항고했으나 3월 대전고등법원이 이를 기각시켰으며 이 지회장은 4월 농성을 해제했다. 이에 금속노조 측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하자 12월 대전고등법원이 일부 인용결정을 내렸고, 2015년 4월에 검찰은 유시영 대표 및 본사를 기소했다.

위와 같이 창조컨설팅과 같이 일으켰던 노조 무력화 공작의 결과는 참혹했다. 파업 이후 본사는 조합원들에게 대규모 징계를 내려 27명을 해고했고, 89명에게 17억 5,000만원 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서 2013년 1심에서 12억여원, 2015년 2심에서 10억원을 각각 내도록 판결했다. 거기에 제2노조에 가입하도록 회유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파업의 주체였던 1노조는 2012년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잃었다. 반면 해고행위 자체는 중앙노동위원회 및 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봤고, 2012년에는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해고자 27명의 해고 조치는 전원 무효라고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5월에는 회사 측이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켰으나, 10월에는 다른 이유를 들어 11명을 또 해고시켰다. 이에 중앙노동위원회 측은 이를 부당해고로 보면서도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2014년에 해고자 11명이 대전지법 천안지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냈으나 2015년 1심에서 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가(2014가합1969), 이에 해고자들이 항소를 하자 이듬해 대전고법은 해고무효 선고를 내렸다(2015나11661). 그럼에도 회사가 상고했지만 2018년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2016다242884). 또한 해고자 11명은 중노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벌여 2019년에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40% 이상이 우울증 고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도 여럿 발생했으며, 노동자 1명은 11건의 고소에 시달리던 도중 주간근무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거부당한 다음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게다가 2014년에는 재해율 15%로, 압도적인 1등을 기록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한광호 노동자가 2016년에 자살하자, 노조 측은 서울시청 분향소 투쟁, 청와대 오체투지, 양재동 노숙 농성 등의 추모 투쟁을 해왔다.

2013년에 1노조 측이 본사 및 2노조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을 낸 후, 2016년 법원 측은 1심에서 2노조가 사측이 계획하여 주도한 노조이기 때문에 그 설립이 무효하다고 선고했다(2013가합367). 이에 2노조 측이 항소에 상고까지 했지만 2017년 서울고등법원 2심(2016나6950), 2021년 2월 대법원 상고심(2017다51610)에서 각각 패소 판결됐다. 반면 본사는 2016년 1심 선고 후 이름만 다르고 2노조에서 일하던 위원장, 사무국장에 의해 운영되는 유성기업 새노조(3노조)를 설립했다.

2017년 2월 유시영 대표이사가 대법원에서 유죄 인정되어 징역 1년 2개월을 판결받아 법정 구속됐고, 2018년 4월 출소 후에도 1노조 조합원에 대한 처우는 아직도 그대로였으며 2019년에는 회사가 <굿모닝 충청> 등 회사 비판 기사 54건에 반론/정정보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2019년에는 유시영 회장과 이기봉 전 부사장 겸 아산공장장, 최성옥 전 전무 겸 영동공장장 3명이 기소되어 유 회장은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징역 1년 10개월 및 벌금 500만원, 이 전 부사장에겐 징역 1년 4개월 및 집행유예 3년, 최 전 전무에겐 징역 1년 2개월 및 집유 3년 등을 각각 선고했다.(2019고합45) 이에 유 회장은 항소하여 2020년 1월 대전고법 2심에서 1년 4개월로 감형됐고(2019노351), 5월 대법원에서도 2심과 같은 형이 확정됐다(2020도1281).

2018년 11월 22일, 아산공장 관리동을 점거하던 1노조 조합원 5명이 김모 상무를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터졌고, 이에 경찰이 출동했지만 노조원들에게 막혔다. 28일 채널A 기사에서 유성기업에서 노조원들이 김 모 상무를 집단폭행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이 공개되었는데(당시 기사) 당시 가해자와 노조 등은 '우발적 폭행'이라고 주장했고, 1노조 측은 유감을 표하며 서울사무소 농성을 해제했다. 이에 본사 직원 150명은 민노총의 협박 등을 우려하며 경찰에 '폭행 가담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고, 한국경제신문은 <유성기업지회 연도별 폭력행위>를 입수해 이전에 있었던 노조의 폭력행위 사례를 언급했다. 또한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11월 27일 방영분, <조선일보> 12월 1일자 기사, MBN 뉴스 12월 6일자 단독보도 등 사실관계까지 안 거친 보도까지 이어지자 노조 측의 이의제기에 따라 정정보도가 잇따랐다.

사건 당시 경찰의 대응 문제도 도마에 올라 경찰청 측은 합동감사단을 꾸려 김보상 아산경찰서장에게 징계를, 당시 현장출동 경찰관들에겐 면책 처분을 내렸다. 또한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도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12월경 구속 후 2019년 6월에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노조 측의 '우발적 폭행'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합원 중 A는 징역 1년, B는 징역 10개월, 나머지 3명은 징역 10개월 및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 등을 각각 선고했다. 이에 가해자 5명이 항소했지만 2020년 대전지법 항소심에서 5명에게 징역형을 내려 법정 구속시켰다. 그 2명은 수감 와중에도 2020년 들어 근속연수 15년을 채웠다는 이유로 반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0년 12월 31일, 지난 9년여 간 발생한 임단협, 파업 과정의 고소/고발 취하, 감시카메라 철거/재발 방지, 노조 간 차별 금지, 쌍방 유감 표명 등을 담은 '단체교섭 잠정 합의안' 투표에 조합원 87.5%가 찬성을 표했으며, 이듬해 1월 18일 비공개로 조인식을 맺었다. 그간 본사의 노사관계는 수 년 전부터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다. 극단적인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며, 기업 실적 자체도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하락해왔다.[9]

8. 참고 문헌


[1] 서애 류성룡의 12대손이다.[2] 1987년 부천시 측의 토지구획 사업에 따라 372번지로 변경.[3] 해당 부지는 2001년에 시공사였던 고려산업개발이 부도나자 대우건설에게 넘겨졌고, 이에 따라 현재 그 땅에는 중동역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4] 1990년대 이전에는 '융화단결과 책임완수, 기술혁신과 경영합리화'였다.[5] 1914~2003. 유홍우 창업주의 장인이자 윤용숙(1936~2016) 전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의 부친, 한국 자동차 업계의 원로이며 호는 청암. 1933년 일본포드자동차 서울지점 남본상회에 입사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입문한 이래 자유모터상회 대표,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및 명예이사장, 고문 등을 지냈으며, <한국자동차 70년사>란 책을 내기도 했다.[6] 2009년 당시 유성기업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국내 연평균 노동시간의 2,174시간을 웃도는 2,400~2,600시간이었다. 이미 2007년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도 생체 리듬을 교란하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이라고 보고했다.[7] CJ그룹과는 관계없는 회사로, 2011년 폭력사태 이후 경비업 등록이 취소됐다가 일부 직원들이 '지원가드'를 세운 바 있다. 이마저도 나중에 '터닝포인트'로 바꿨다가 2014년에 문을 닫았다.[8] 정식 명칭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1961년 설립 이래 한동안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소속의 친기업 노조였으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후 노조 민주화 과정을 거쳐 1994년 한국노총을 탈퇴한 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 가입했고, 이듬해 민주노총 결성에 참여하면서 현재 금속노조 소속으로 이어진 것이다.[9] 단적으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연도별 ROE를 보면 9.75%, 7.01%, 4.77%, 3.37%, 2.37%로 꾸준하게 하락해왔다.[10] 해당 방영분 중 유성기업 파트는 본사 측의 요청으로 KBS 홈페이지에 반론보도문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