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이자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후원회장인 신평 변호사가 MBC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중심으로 총선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데, 안철수 의원이 총선을 주도해서 당대표로 주도를 하겠다? 찬성하기가 어려운 그런 입장 아니겠습니까."라는 발언을 해 발생한 논란이다. #그리고 이후 김기현이 당대표가 되면서 해당 논란은 그대로 잊히나 했는데, 2024년 5월, 22대 총선에서 윤석열과 윤한갈등으로 각을 세웠던 한동훈이 당대표에 출마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익명의 친윤계 핵심인사가 한동훈과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으며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면 탈당도 고려하겠다는 발언을 한 언론에 흘리면서 다시 소환되었다.# 그러나 보수층에서 아직 윤석열에게 호의적이었기에 큰 논란이 되지 않았던 2023년 논란 당시와는 달리, 2024년 논란 때에는 보수층에서도 총선 패배의 책임과 용산 대통령실의 여러 정책적 실책 등으로 인해 윤석열에게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매우 많아진 까닭에 도리어 탈당 논란이 나오자 당원들과 보수층이 앞다퉈 빨리 나가라며 성토를 퍼부었고, 이에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대통령 탈당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2. 배경
2021년 10월 13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런 정신머리면 당이 없어지는 게 맞다"라고 발언하였고, 같은 해 12월 23일 "정권교체를 해야 되겠고 민주당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제가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9가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을 다 포용할 수 없는, 선뜻 내키지 않는 정당이 아니었느냐"라고 발언하여 국민의힘에 대한 비토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또 김한길 등 민주당 출신의 인사를 곁에 두어 새시대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새시대준비위원회에서 만든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포스터가 공식적으로 붉은색과 흰색으로 제작된 당색과 달리, 노란색과 주황색 배경으로 만들어져 논란이 발생했다.[1]
당선 이듬해에는 급기야 대통령측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제안한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윤석열 신당'을 위한 초석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불거지게 되었다.
만약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친윤 인사들이 국민의힘을 집단 탈당해서 새로운 당을 만든다면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재림이[2] 발생하게 된다.
3. 전개
2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라던지 , " 안철수가 당대표가 되면 대통령이 친윤계 신당을 만들자고 하실 것" # 등의 내용으로 글을 써서 파문이 일었다.{{{#!folding [신평 페이스북 글]
안철수 의원이 국힘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기세를 얻었다. 안 의원은 ‘윤심’이 아니라 ‘윤힘’을 주장하며, 자신이 당대표가 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이 큰 힘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대통령실 관계자들까지 나서서 윤 대통령과 안 의원의 관계는 항상 긴장의 선을 그리며 어긋나왔다는 점을 밝히기에 이르렀다.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분의 관계는 처음부터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대선과정에서 1차 단일화 작업이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안 의원은 그런 물밑작업 자체를 부인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며 합의의 완성을 거부했다. 그후 내가 윤석열 후보에게 꼭 다시 단일화를 하여야 한다고 진언했을 때, 윤 후보는 안 후보의 신뢰성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표시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 인수위 시절이나 조각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양자합의의 정신을 지키려고 가급적 노력하였다. 그러나 안 의원 측의 사정으로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본다. 한편 정부 출범 후 여러 어려운 과제가 속출했을 때 안 의원이 정부 편에 서서 원만한 국정운영을 돕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한 자취가 전혀 없다. 심지어 이준석 전 당대표가 독사가 맹렬히 독아(毒牙)를 박으려는 듯이 윤 대통령 측을 공격해도 안 의원은 멀찌감치 내다볼 뿐이었다. 그는 국정의 방관자로 지금까지 일관했다.
내년의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생사를 가를 중대사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여당이 지면 윤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어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다 결국 허망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이 총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짐이 너무나 명백하다. 그런데 왜 안철수 의원은 이런 성격의 총선을 지휘할 당대표 선거에 굳이 나서고 있는 것일까? 안 의원이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나 윤 정부에 취해온 철저한 방관자적 역할을 완전 잊어버린 듯이, 느닷없이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서 윤 정부를 돕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떤 면에서 앞뒤가 맞지않는, 심지어 조롱의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 무난하게 김기현 의원이 윤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책임당원들의 견고한 지지를 얻어 당대표에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항상 그 속에 변화무쌍한 인자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약에 안 의원이 당대표가 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경우에 따라서, 윤 대통령은 국힘당을 탈당하고 정계개편을 통한 신당 창당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심판적 의미를 갖는 총선을 자신을 간판으로 내거는 선거로 하고 싶은 강렬한 희망과 의지를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윤 대통령과 같이 하기를 원하는 세력이 떨어져나가고 난 다음, 국힘당은 안 의원과 이준석 전 당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의 연합당으로 변모할 것이다. 이 당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질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차제에 나도 내 의견을 한 마디 내자. 나는 소위 ‘윤핵관’이라는 용어에 이준석 전 당대표가 넣은 대단히 불순하고 표독한 의미가 담겨있음을 잘 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어느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광범한 국정운영을 해나갈 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여기저기 쓰지 않을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유독 윤 대통령에게만 한정해서 그가 쓰는 심부름꾼을 ‘윤핵관’으로 지칭하여 가혹하게 비난하는 것은 결코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이것 역시 윤 대통령을 ‘정치초짜’라고 하여 일거수 일투족까지 폄하하는 못된 심보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민심을 하늘 같이 받들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 세상에서 ‘윤핵관’을 간신(奸臣)의 대명사인양 보는 민심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한다. 민심은 곧 천심인 법인데, 어느 누구든 여기에 대항하려는 모습은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내가 보기에도, 윤핵관으로 지칭되는 사람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장제원 의원에게 용맹함은 있어도 지혜로움은 찾기 어렵다. 이런 이의 역할은 반드시 일정범위 안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를 이선으로 후퇴시킴이 마땅하다고 본다.}}}
2월 6일 신평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후원회장직 사퇴 요구에 이는 독재국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 커지자 처음에는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이탈자가 나올 수 있다며 말을 돌렸다가 결국 2월 8일 김기현 후보 후원회장직에서 사퇴했다.
4. 반응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월 4일 페이스북에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서 신당창당을 한다는 이야기는 적극적 해당행위입니다. 또한 당원들에 대한 협박에 해당하는 극언입니다."라며 신평 변호사의 발언을 비판하였고, 김기현 후보 후원회장직을 사퇴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 "이런 주장의 파급력은 매우 크며 만약 이것이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 것이라면 대통령실은 부연설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외교부 기후환경대사직으로부터 해임하며 노골적으로 당무에 개입했던 것을 언급하며 김기현 후보가 같은 잣대로 신평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김기현 후보에게 신평 후원회장 해촉을 요구한 뒤 "대통령실도 신 변호사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1] 노란색은 정의당의 당색이었고, 주황색은 안철수가 이끌던 국민의당의 당색이다.[2]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7개월 만인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서 당적 없이 집권 초기를 지냈다. 그리고 호남 신주류와 친노 인사를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파가 민주당을 집단 탈당해서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게 된다. 다만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은 2004년 탄핵 소추안 기각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