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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乙毗咄陸可汗(? ~ 653)
서돌궐의 제11대 가한. 이름은 아사나욕곡(阿史那欲谷).
2. 생애
638년에 사발라질리실가한이 무리들의 인심을 잃어 아사나통에게 습격을 받아 패해 언기로 달아났는데, 그가 떠난 후에 서돌궐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을비돌륙가한을 세우려고 한 아사나통도 살해당했다. 을비돌륙가한은 사발라질리실가한에게 패해 그가 옛 땅을 찾았지만 서부에서 가한으로 추대되었으며, 을비돌륙가한이 즉위하고 사발라질리실가한과 크게 싸워 많은 사상자가 나타나자 땅을 나누면서 을비돌륙가한은 열수의 서쪽을 통치하게 되었다.촉갈산의 서쪽에 아기를 세워 이를 북정이라 했고 궐월실, 발실미, 박마, 결골, 화심, 촉수곤 등이 귀부해 이열수를 경계로 했다.
을비사발라엽호가한과 서로 공격하다가 점차 세력이 강해져 서역의 여러 국가들이 대부분 귀부하자 석국에게 641년에 을비사발라엽호가한을 공격하게 해서 그를 붙잡아 죽이면서 서돌궐을 통합했으며, 토화라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스스로 강대해진 것을 믿고 교만해져 당의 사자를 억지로 머물게 하면서 서역 국가들을 침략하고 횡포를 부렸다. 군사를 파견해 이주를 노략질하자 곽효각이 2천을 거느리고 공격하자 패했는데, 을비돌륙가한은 처월, 처밀 두 부를 파견해 천산에서 곽효각을 포위했지만 오히려 패해서 처밀이 당나라에 항복했다.
또한 올비돌륙가한은 강거를 지나가다가 미말하국을 공격해 노획한 것이 아주 많아 아랫 사람들에게 나눠지 않았다가 아사나니숙이 탈취하자 그를 죽여 조리돌림을 했으며, 무리들이 화가 나자 호록옥의 습격을 받았고 그의 무리는 달아나서 백수호성을 지켰다.
이로 인해 노실필의 여러 부와 을비돌륙가한의 부하인 아사나옥리가 당나라에 파견해 그를 폐위하고 새 가한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자 당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되어 을비사궤가한이 세워지면서 백수호성에서 공격을 받자 싸워서 이겼지만 옛 부락들이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 하자 서쪽으로 가서 토화라[1]로 달아났다.
648년에 사발라가한이 가한이 되자 그와 연합하다가 653년에 사망한다.
[1]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하나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