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구범 李九範 | |
본명 | 이봉세 (李鳳世) |
창씨명 | 오야마 다카시 大山隆司 |
출생 | 1915년 8월 13일 |
경상북도 달성군 | |
사망 | 불명 |
직업 | 경찰공무원 |
학력 | 경성부 사립 중동학교 (졸업) |
주요 경력 |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 경기도 여주경찰서 경부보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보 송도항공회사 사장 본정경찰서 경무주임 개성경찰서 서장 본정경찰서 서장 중부경찰서 서장 수도관구경찰청 부청장 강원도 경찰국장 |
비고 | 친일인명사전 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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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과 대한민국의 경찰, 친일반민족행위자. 본명은 이봉세(李鳳世). 창씨명은 오야마 다카시(大山隆司).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며 항공회사를 설립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의 전쟁을 돕기도 했다.
2. 생애
1902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해 1922년 3월 경성부 사립 중동학교를 졸업했다.1928년부터 1930년까지 경기도 경성부 본정경찰서에서 순사로 일했다. 1930년 5월 12일 경기도지사가 주관한 경기도 순사부장 시험에 합격하여 1931년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에 임명되었고 1933년 3월 치러진 제14회 조선총독부 도경부(道警部) 및 도경부보(道警部補) 고시에 합격했다.출처
1935년부터 경기도 여주경찰서 경부보에 임명되어 근무했으며 1937년 3월 다시 경기도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보로 옮겨 1940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개성경찰서에서 근무했다. 일제 말엽 송도항공회사(松都航空會社)를 설립해 일제의 전쟁에 협력했다.출처
광복이 되자 1945년 8월 17일 개성시민들은 그의 집에 몰려가서 불을 질렀다. 그러자 그는 서울로 피난와 다시 본정경찰서에서 경무주임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1945년 11월 초 경기도 개성경찰서 서장으로 임명되자 개성시민들은 일제강점기 개성경찰서에 근무할 때의 그의 친일행위를 규탄하며 배척 운동을 벌였다. 그는 다시 서울로 쫓겨와 다시 본정경찰서에서 경무주임으로 근무했다. 1월 4일 전 본정경찰서장이 사표를 내자 본정경찰서 대리를 맡게 되었다.출처
1946년 1월 12일 장택상이 경기도경찰부장으로 취임하자 그는 장택상을 찾아가 자신을 본정경찰서장으로 임명할 것을 부탁했다. 장택상은 1월 26일 서울 시내 서장 인사 단행시 그를 본정경찰서장으로 임명했다.출처
1948년 9월 수도관구경찰청 부청장으로 임명되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고 체포령을 내리자 이를 피하여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반민특위가 해산된 후 귀국하여 복귀했다. 1952년 7월 28일부터 1953년 3월 23일까지 제10대 강원도경찰국장(경무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