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04:12:29

이금재

<colbgcolor=#000><colcolor=#fff> 이금재
李錦在
파일:이금재.jpg
출생 1946년 7월
전라남도 보성군
사망 2023년 2월 5일 (향년 76세)
광주광역시 자택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체육인
학력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학사)
약력 광주광역시체육회 사무처장
전남배드민턴협회 전무이사
동신여자고등학교 코치
조선대학교 코치
조선내화화학 코치
대한배드민턴협회
가족 배우자 주숙자, 슬하 1남2녀 이연진·이시영·이훈성

1. 개요2. 생애3. 사망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체육인.

2. 생애

조대부고에 핸드볼 선수로 입학했지만 1963년 2학년 때 배드민턴으로 종목을 바꿨다. 이금재를 비롯한 조대부고 학생 네 명이 당시 광주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배드민턴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대에서 배드민턴 선수 생활을 한 뒤 1973년 광주충장중학교에 배드민턴단을 창단하며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1978년에 전남 배드민턴 협회 전무이사가 됐고 전국체전에서는 전남 대표 선수로도 뛰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80년에는 광주일고에 배드민턴단을 만들었고 창단 첫해에 춘계대회와 종별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같은 해 전국체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되던 전남의 광주일고와 동신여고가 어이없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종합 6위로 밀려나며 큰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전남배드민턴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1983년 2월에는 김학석 전무이사와 함께 심판이사로 기용되며 '선수 출신 집행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88년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지역 예선에는 총감독으로 참가했다.

1990년대 전남체육회 운영과장, 광주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냈고 2001년 정기 대의원총회를 열고 이형도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공석이 된 회장직에 부회장에서 직무 대행으로 추대되었다. 덕분에 2001~2003년에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25대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을 지내는 역사를 남겼다. 2021년에는 제31대 대한배드민턴협회 김택규 회장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3. 사망

2023년 2월 5일 광주광역시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