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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5:29:11

이상만(1924)

이상만 | 李相萬
출생 1924년 7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사망 2002년 10월 16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혜화동
학력 영창중학교 (졸업)
가족 부인 이혜경, 슬하 1남 2녀
1. 개요2. 일생3. 활동 내역
3.1. 라디오 드라마
4. 수상 경력5. 참고/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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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음향효과기사 겸 라디오 드라마 PD.

성우 이혜경의 남편이기도 하다.

2. 일생

1924년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영창중학교(현 성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연극 대본을 제작하는 곳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다가 1945년 10월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하여 음향효과 및 연기자 섭외 업무를 맡기 시작했으며 그가 처음 참여한 라디오 드라마는 1946년작 <똘똘이의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전문 성우가 없어서 라디오 드라마는 으레 배우들이 도맡아 했는데, 그는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시킬 배우들을 섭외하러 영화 촬영장이나 극장, 이들의 자택 등을 일일이 찾아다녔으며 녹음 작업 시에는 구식 녹음기를 들고 들이나 산으로 가서 동물 울음소리와 새 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아 잡혀가거나 들짐승에게 쫓기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또한 1947년에는 이규환 감독의 <민족의 새벽>을 시초로 영화 음향효과도 줄곧 도맡았다.

1952년 <국악무대>를 시초로 라디오 드라마 연출에도 손을 벌려 <열두냥짜리 인생>, <안시성의 꽃송이>, <수요일 밤의 향연> '도라지 고개의 전설', <소슬한 바람> 등 라디오 연속극 및 단막극 등 총 1,000여 편을 연출했으며, 특히 1964년부터 5분짜리 장수 라디오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연출하여 1966년 방송문화상 제작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1959년에는 조남사 작가의 뒤를 이어 연출계장을 몇 년 동안 맡기도 했으며 1963년 일본 NHK 연수과정을 이수했다.

1979년 7월 55세로 정년퇴직했지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84년까지 연장되어 촉탁사원으로 근무했고, 그러고 나서 이원홍 당시 사장의 배려로 방송위원(2년 계약직)을 지내다 1986년 3월 31일부로 KBS를 완전히 떠났다. 재직 당시 숱한 방송 내력 외에 퇴직 전까지 한 번도 지각과 결근을 하지 않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90년 KBS 방송사료편찬위원, 1995년 KBS 사우회 부회장을 맡는 등 방송계의 원로로서 영향력을 지니다가 2002년 10월 16일 아침 6시, 서울 혜화동 자택에서 향년 78세로 숨을 거두었다.

3. 활동 내역

3.1. 라디오 드라마

4. 수상 경력

5. 참고/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