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백 李守白 | |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 미상 |
사망 | 1634년 |
한성부 |
1. 개요
조선의 무관.2. 생애
1606년 경원 판관으로 임명되었고 1617년 포도청 종사관으로 있었다. 관리로서의 평은 상당히 좋지 않아 아녀자를 겁간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빈번하게 했다.1624년 이괄의 휘하 장수로 있다가 이괄의 난으로 거병할때 기익헌과 같이 참가했으며 마탄 전투 이후 전사한 관군 장수 7명을 효수시키자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한성까지 점령했다. 무악재 전투 당시 치마바위에서 관군의 측면을 쳤지만 이확이 이끄는 포수들에게 저지당했다.
결국 패배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조정에서 이괄의 목을 베어오면 부원군에 봉하고 상금을 준다고 하자 기익헌과 함께 이괄과 동생 이수, 아들 이전, 한명련 등 주동자 9명을 살해하고 관군에게 투항했다. 이에 사형은 면했지만 귀양갔다가 수년 후 사면되어 한성에서 거주했다.
1634년 3월, 마탄 전투에서 전사하고 효수된 이중로의 아들 이문용, 박영신의 아들 박지병 등에게 백주대낮에 목이 베였다. 이문영과 박지병 등 5명은 이수백의 목을 가지고 대궐에 찾아와 자수하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았으나 국법을 어겼으므로 벌을 받겠다고 상소했다. 이에 우의정 김류는 물론 영의장 윤방, 좌의정 오윤겸도 역적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는 점을 참작하여 용서해줄 것을 청했으나, 인조는 이를 거부했다. 다만 이문용의 아버지인 이중로가 공신이라는 점, 그리고 효심으로 저지른 복수라는 점은 인정해서 이수백을 살해한 자들을 모두 사형을 면하고 유배형에 처하는데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