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수화(李守和, ?~1051)는 고려의 관료다. 2차 여요전쟁 흥화진 전투에서 양규와 함께 싸웠다.2. 생애
1010년 11월 거란군이 침략할 때 흥화진 부사[1]이자 종7품 장작주부(將作注簿)[2]로서, 도순검사 양규와 흥화진사 정성, 판관 늠희령(廩犧令) 장호(張顥)와 함께 흥화진성을 지켰다. 거란군이 당도하여 화친을 권하자, 이수화는 이에 맞서 거란군의 후퇴를 종용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서있는 자는 마땅히 간사하고 흉악한 자를 제거해야 하고, 아비를 의지하고 임금을 섬기는 자는 모름지기 절개와 지조를 굳건히 해야 하니, 만약 이러한 이치를 어긴다면 반드시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민(民)의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밝으신 지략을 거두어주십시오. 천망(天網)을 크게 펼쳐두고 어찌 참새와 같은 작은 새들이 먼저 뛰어들기를 바라십니까. 병거(兵車)에 올라가 통할하시면 비휴(貔貅)와 같은 용맹한 군대의 복종을 얻어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화의 1차 표문
이수화의 1차 표문
신들은 지난 날 조서[詔泥]을 받들 때마다 번번이 굳건한 심정을 진술하였습니다. 허물을 보고 눈물 흘리는 은혜[泣辜之惠]를 내려주시기 바라고 그물을 풀어주는 인자함[解網之仁]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서리에도 버티고 눈을 감내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할 것이며, 뼈가 재로 변하고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천년의 성업(聖業)을 영원히 받들 것입니다.
이수화의 2차 표문
이수화의 2차 표문
1012년 6월 9일 중서문하성의 종6품 좌습유(左拾遺)로 임명된다. 1016년 1월 22일에는 김은부가 호부상서로 승진할 때, 정6품 좌보궐(左補闕)로 승진하였다.
1019년 8월 5일에는 송에 신년하례사로 예빈경(禮賓卿) 최원신(崔元信)과 함께 파견된다. 이때 배를 타고 가다가 진왕수(秦王水)[3] 어귀에서 풍랑을 만나 전복 사고를 겪었다. 송 진종은 이들을 위로하고 불경 등 다양한 물품을 하사한다.[4] 이듬해 왕가도 등이 상서우승으로 승진할 때, 종5품 기거랑(起居郞)으로 승진하였다.
1020년 5월 30일, 작년의 일로 인해 송에 방문했던 최원신과 함께 유배당했다.
1035년 이전 알 수 없는 시점에 정4품 호부시랑으로 복직하여 거란에 토산물을 바치러 사신으로 파견된 바 있다. 이후 예부상서를 거쳐 1047년 서북면추동번병마사(西北面 秋冬番兵馬使)에 임명되었다.
그 후 상서좌복야가 되었다가 1051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