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1:29:33

이스마엘 우르사이스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파일:Ismael Urzaiz.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이스마엘 우르사이스
Ismael Urzaiz
본명 이스마엘 우르사이스 아란다
Ismael Urzaiz Aranda
출생 1971년 10월 7일 ([age(1971-10-07)]세)
스페인국 나바라주 투델라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 체중 8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89-1993)
레알 마드리드 CF (1990-1993)
알바세테 발롬피에 (1991~1992 / 임대)
RC 셀타 데 비고 (1993 / 임대)
라요 바예카노 (1993~1994)
UD 살라망카 (1994~1995)
RCD 에스파뇰 (1995~1996)
아틀레틱 클루브 (1996~2007)
AFC 아약스 (2007~2008)
국가대표 25경기 8골 (스페인 / 1996~2001)
8경기 3골 (바스크 / 1997~2006)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현역 시절 약 10년간 빌바오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29골을 기록했다. 이후 빌바오의 간판 스트라이커 계보는 아리츠 아두리스페르난도 요렌테가 잇는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고향 투델라를 연고로 하는 CD 투델라노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85년 라 파브리카로 적을 옮기면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스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다. 각 연령별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끝에 1989년 레알 마드리드의 리저브 팀인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소속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그곳에서 경기당 0.5골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1990-91시즌 존 토샥 감독에 의해 1군으로 콜업되었다.

1군에 워낙 쟁쟁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있던 탓에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1990-91시즌 유러피언컵 오덴세 BK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면서 마침내 1군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이후 알바세테 발롬피에RC 셀타 데 비고에서 임대 생활을 한다. 임대 복귀 후 1992-93시즌 RCD 마요르카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 출전하여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된 3년 동안 총 2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1993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뒤 2시즌 동안 라요 바예카노UD 살라망카에서 뛰었지만 1994-95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알바세테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려 살라망카의 1부 리그 승격을 도운 것 외엔 이렇다 할 활약 없이 부진한 모습만 보였다.

1995-96시즌 3500만 페세타RCD 에스파뇰로 이적하였고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커리어 처음으로 리그 두 자릿수 득점(13골)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 2위로서 팀이 리그 4위로 UEFA컵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스파뇰에서의 활약은 여러 클럽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1996-97시즌을 앞두고 255만 유로에 명문 아틀레틱 클루브로 이적했다. 첫 시즌부터 18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고 2006-07시즌까지 11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컵과 같은 유럽대항전에선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리그에선 6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라리가를 대표하는 정상급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신예 아두리스와 요렌테의 성장으로 2007년 여름 빌바오를 떠나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명문 AFC 아약스로 이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출되면서 37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스페인의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면서 1988 UEFA 유로피언 U-16 챔피언십 우승과 1991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5위를 이끄는 등 유소년 선수로선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나 성인 무대에선 좀처럼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는 바람에 성인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않고 있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의 부름을 받아 25세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첫 승선했고 1996년 10월 9일에 치러진 체코와의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은 라울 곤살레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키코 나르바에스, 후안 안토니오 피치에게 밀려 참가하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 예선 6경기에 출전하여 6골 2도움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스페인의 유로 본선 진출에 크게 공헌했고 유로 본선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유로 2000 조별리그 첫 경기인 노르웨이전에서 라울 곤살레스와 함께 최전방 투톱으로 선발 출전하였고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 없이 경기를 마치며 0:1 패배에 일조했다.

첫 경기에서의 부진으로 이후 경기부터 알폰소 페레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후반 조커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유고슬라비아전에서 후반 추가시간(90+6분)에 페널티 박스 안으로 한 번에 넘어오는 펩 과르디올라의 크로스를 헤더로 알폰소 페레스 앞에 떨궈주면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여 스페인의 8강 진출에 보탬이 되었다.

8강 프랑스전에서는 1:2로 끌려가던 57분 교체 투입되었지만 결국 경기를 뒤집지 못하면서 8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1년 2월 28일에 치러진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을 마지막으로 은퇴 때까지 소집되지 않았다.

바스크 축구 국가대표팀으로선 1997년부터 2006년까지 9년간 8경기에 출전하였으며 3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