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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연호(李淵瑚) |
출생 | 1919년 9월 23일 |
사망 | 1999년 2월 5일 (79세) |
학력 | 춘천고등학교 |
1. 개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장로회 목사, 화가이다. '빈민의 아버지'로 일컬어졌으며 호는 수암(壽巖)이다.2. 생애
2.1. 일제강점기
1919년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나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1938년 3월 고교 재학 중, 학교 내 항일 학생 비밀조직인 상록회(常綠會)의 2기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상록회에서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비밀 토론 모임에 참가하여 민족주의 이념과 조선독립에 대한 방안에 관해 논의하고, 상록회의 하부 조직인 독서회(讀書會)와도 긴밀한 연계활동을 도모함으로써 춘천 지역의 학생항일운동을 선도하였다.
그러나 1938년 가을, 상록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회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년여 동안 갖은 고문을 당하고 193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의 죄목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2.2. 광복 이후
광복 후 빈민촌에 교회를 설립하고[1] 목회활동을 하며 화가로도 활동하였다.넝마주이, 부랑인, 고아, 과부 등 전쟁으로 인한 이재민들이 모여살던 이촌동 한강변에서 빈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동고동락해 빈민의 목회자라 불렸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거지 아이들을 기숙사에 데려와 자기 방에서 재우며 기숙사에서 주는 죽을 나누어 먹이고 대규모 빈민 밀집지대였던 이촌동에 교회를 세웠다. 또한, 그들을 위해 무료 병원을 세웠다.
교회 건축을 위해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미국 로렌스 대학 유학시절 수채화 가인 트리시 교수로부터 2년간 배웠던 그는 '화가 목사'이기도 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 속에 뛰어들어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1966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를 창립했다. 동서양이 조화된 이촌동 교회도 직접 설계했으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한국의 기독교 미술을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아마추어 작가'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후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고 197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999년에 별세하였고,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이다.
3. 여담
1938년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를 당시(1939년~1941년),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최근 공개되어 2021년 3월 7일 TV쇼 진품명품에 출연하였다.[1]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부이촌동 새남터성당 바로 옆이다. 현재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서노회 소속 이촌동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