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맛을 만나면, 인간은 침묵하기 마련이지.
미스터 초밥왕의 등장인물.
전국대회편에서 심사위원장으로 등장한다.
전일본 초밥협회장을 맡고 있는 노인으로, "맛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자존심 강한 무토 츠루에조차도 그의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릴 정도.
츠루에의 말에 의햐면 15세에 초밥 수행을 시작하여, 20세에 초밥요리사로서 길을 시작했고 30세에는 명실상부한 최정상의 명인에 올랐다. 70년 동안 초밥업계의 정상에서 군림했다고 하니 최소 90세, 은퇴 후 몇년 째 초밥협회 회장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아마 90세 이상 100세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1] 젊은 시절 격무와 혹독한 수행으로 인해 절대 감각은 얻었으나 그와 동시에 눈이 멀고 말았고 시각 이외의 모든 감각이 이상할 정도로 발달했다. 즉, 사지 안토가 얻은 절대 미각은 그 또한 터득하고 있는데, 이와시키 옹은 절대 미각을 포함한 절대 감각의 소유자이다. 즉, 시각을 뺀 다른 감각이 다른 사람들을 초월했다. 절대 후각, 청각, 미각, 촉각, 육감 등 절대 오감의 소유자이다. 그의 미각은, 무토 츠루에나 미조구치 야스지로조차 느끼지 못하는 맛조차 민감하게 느낄 정도다. 초밥요리사로서의 실력또한 오오토리 세이고로를 아득히 넘어서는 이 작품 최고의 실력자로 미스터 초밥왕2 시점에서도 세키구치 쇼타나 사지 안토도 그에 범접하는 실력은 갖추지 못한 것을 보면 그냥 먼치킨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미스터 초밥왕의 무명승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전맹임에도 전국대회 결승 5회전에서 채점 결과를 직접 보고 읽는 설정 오류를 보인다.
평소에는 긴 눈썹이 아래로 쳐저 눈을 가리고 있어 실눈 캐릭터로 보이나, 정말로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는 그때 긴 눈썹이 위로 치켜올라가서 가려진 눈이 보인다. 세인들은 이를 미각 눈썹이라고 칭한다. 그 맛에 따라 한 쪽 눈썹이냐 양 쪽 눈썹이냐의 차이가 있으나, 이와사키 옹의 측근[2]에 따르면 자신이 모신지 30년이 되었음에도 양 쪽 눈썹이 올라간 경우는 30년 가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대회 결승전 1회전인 초밥 재현 승부에서 세키구치 쇼타가 정답은 맞추지 못했으나[3] 본인보다 맛있는 초밥을 만들어내면서,[4] 이와사키 옹은 30여년만에 양 눈썹을 치켜뜨고 말았다.
그리고 이와사키 옹은 자신의 두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의 초밥을 만든 쇼타와 쟁쟁한 라이벌들을 보고, 그 이후부터 원래 계획됐던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츠루에 따윈 울고 갈 정도로 저세상 난이도를 가진 새로운 과제를 선보인다.[5] 어찌보면 만악의 근원. 하지만 츠루에처럼 쇼타에게만 불리한 과제를 낸것이 아니라 전원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이후에는 전국대회 결승전 심사를 보았고, 은퇴하려는 오오토리 초밥 사장 오오토리 세이고로를 설득하여, 전국초밥협회의 회장직을 맡긴다.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 오오토리 세이고로가 손을 떨며 은퇴를 결심할 즈음 (아마 65세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 영감님은 전국대회 결승전 1차전 제1과제의 모델로 만들어진 초밥을 직접 만들어 도전자들에게 제공했다. 이 정도면 신 중화일미의 요리사들이랑 붙어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세이고로가 항상 손을 떠는건 아니고, '어쩌다 한번' 이었지만, 세이고로의 좌우명인 '요리사에겐 어쩌다 한번이, 손님은 평생 한번 먹는 것 일수도 있다' 라는 신념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악화되는 증상 때문에 은퇴한 것이지 초밥 1인분 정도 만드는건 일도 아닐것은 확실하다. 다만 오오마사도 세이고로의 실력이 떨어졌다고 인정했는데[6], 이분은 100살 가까이 되어서도 쇼타나 사지 안토를 넘어서는 레벨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무서울 뿐[7]
다만 캐릭터 설정에서 의외의 설정 구멍이 있는데, 작중 배경은 연재 시기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대략 1992년에서 최대 3년 가량이 지난 1995년 경, 2부 시기 시점으로 리셋되었다고 봐줘도 2000년이 한계인데, 나이가 약 80~90세라고 가정하면 대략 1910년대생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대략 1930년대(15~20세)에 스시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40년대(30대)에 명인급의 명성을 얻었을 것이고, 못해도 노년이 되기 전까지 엄청난 돈을 깨가며 연구하였다고 서술하는데, 그 시기가 일본이 가장 어려웠던 때인 1950년대~1960년대(5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으로 묘사된 배경은 현대 일본에 견줄 정도의 매우 발전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1] 다만 초밥협회 회장직도 초밥과 관련된 일이니, 70년의 경력에 협회 회장도 포함되어 그냥 85세 근방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등장인물 중 누구보다도 많은 나이.[2] 심사위원석에서 이와사키 옹의 우측에 앉은 인물로 이와사키 옹의 측근이라서 폄하될 수 있으나 츠루에 보다 미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심사위원석 배정은 미각 순이기 때문에 말석에 앉은 츠루에 보다 미각이 상당히 더 뛰어난 인물이다.[3] 그래서 더 맛있게 만들고도 맛을 완벽히 재현한 사지 안토에게 졌다. 사지 안토로서는 이겨도 이긴 느낌이 아니었지만.[4] 물론 과제자체가 이미 이와사키 옹이 만든 초밥을 똑같이 따라하기였기에 그 재료와 기술을 기반으로 뛰어넘는게 가능했을뿐, 쇼타가 이와사키를 자력으로 뛰어넘은건 아니니 오해는 금물.[5] 기존 2회전 과제를 일시에 취소하고 기차 도시락을 만들어 오라던지, 깊은 산속에서 반경을 제한하여 회덮밥을 만드는 과제를 내는데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제시한 색깔에 맞춘 과제를 선보이라고 한다던지 등.[6] 여전히 놀라운 솜씨이지만, 과거 실력에 비해 '조금, 아주 조금' 떨어진 맛이라고.[7] 다만 세이고로는 젊을 적 모함을 받아 떠돌이 포장마차 초밥을 운영했던 적도 있는만큼 몸이 많이 상했을 수도 있지만 이와시키 옹은 젊은 시절에 침식을 잊고 좋은 재료를 사서 연구에 몰두하여 몸이 망가져서 시각을 잃은 것을 떠올리면 이와사키 옹이 몸이 더 혹사되었다고 봐야하는데, 세이고로는 젊은 시절에 포장마차를 운영하기는 했으나 그때도 이와시키 옹보다 건장한 체격에 그만큼 몸을 가혹하게 혹사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