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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01 08:40:31

이지상(1193)

李志常 (1193 ~ 1256)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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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인 구처기의 제자이자 전진교 7대 조사로 자는 호연(浩然), 도호는 진상자(眞常子).

2. 생애

산동성 병주 관성현 출신으로 1220년에 스승인 구처기를 따라서 산동에서 오아시스 길의 북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곳을 4년 간 돌아다니다가 귀향하고 스승인 구처기가 여행 과정에 대해 구술한 것을 듣고 장춘진인서유기라는 여행기를 편찬했다.

1251년에 몽케 칸이 자신을 도교의 우두머리, 선교승 해운을 불교의 총수로 임명하자 카라코룸에서 정치적인 영향을 획득하기 위해 <노자팔십일화도>라는 책으로 노자가 서역에 갔는데 부처는 노자의 제자라는 의견을 펼치는 등 불교와 대립하였다.

또한 1255년에는 사찰을 점거하고 불상을 파괴하거나 유교의 공묘 등을 파괴하였으며, <태상혼원상덕황제명위황호성불경>을 편찬하면서 <노자팔십일화도>를 재간행하였다.

그가 사망한 이후 전진교는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3. 대중매체

사조영웅전 및 신조협려에서 등장한다.

사조영웅전에서는 큰 비중이 없고, 전진교 3세대 제자들을 언급할 때 이름이 나오는 편. 구처기가 칭기즈 칸을 만나러 갔을 때 동행하기도 했다.

신조협려에서는 전진교 3세대 제자들 중에서는 윤지평, 조지경, 견지병 다음의 서열로 나오며, 조지경이 몽골에 항복하려 했을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앞장서어 반대한다. 곽양 구출 작전에 참여한 다섯 갈래의 군대 중에서 한 갈래의 지휘관을 맡을 예정이었으나[1], 부상으로 작전에 투입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주백통이 투혼을 발휘해 나서면서 '너 나랑 지휘관 자리를 놓고 경쟁할래?'라고 하자 아니라면서 지휘관 자리를 사양하게 된다. 주백통이 전진교에서 이지상보다 2세대 윗어른이었는지라... 신수판에서는 그런 거 없이 처음부터 주백통이 지휘관 자리를 가져가서 비중이 줄었다.


[1] 전진교 가장 윗어른인 주백통은 부상, 2세대인 전진칠자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투병중, 3세대 중에서 서열이 앞선 윤지평, 조지경, 견지병 세 사람도 모두 은퇴하거나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