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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7:57:33

자니윤 쇼

1. 개요2. 제작 비화3. 상세4. 종영5. 여담

1. 개요


KBS2의 전 토크쇼 프로그램. 1989년 3월 8일부터 1990년 4월 5일까지 방영되었다. 자니 윤(본명 윤종승)이 진행을 맡았으며 조영남이 부진행자를 맡았다.

2. 제작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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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세

미국의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 형식을 그대로 들여온 토크쇼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걸고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점잖게 덕담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확 의표를 찌르며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식의, 순전히 '재치'와 '해학'만 갖고 승부하는 '미국식 유머'를 국내에 도입했다. 다만 미국식 유머는 국내에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음에도 국민 대부분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11시에 만납시다가 월~목 밤 11시에 방송되었고, 자니윤쇼 신설 이후로는 수, 목 방송이 되었지만, 11시에 만납시다는 주로 사회명사가 출연하였기 때문에 자니윤쇼와는 프로그램 성격이 달랐다.

이외에도 그 특유의 '야한 농담'으로도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만 해도 50대 중반의 점잖은 신사 아재가 젊은 여성 앞에서 그런 수위의 색드립을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으나 진행자인 자니 윤이 미국 생활을 꽤나 오래 해서 생긴 어눌한 말투를 사용하면서[1] 이러한 방법은 우리 사회에서 잠시나마 그럭저럭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아무래도 당시 시대상이 '미국 것이라면 똥도 좋다'고 할 정도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에 대해 선망이 컸다 보니(나쁘게 말하면 사대주의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니 우리도 그렇다면 따라야지.'라는 마인드로 버프를 받았던 부분도 있다. 진행 과정에서 여성 출연자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 같은 게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는 대단히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시청자 참여 경품이다. 프로그램에 사연 엽서를 보내는 형태로 참여하는 시청자에게 아시아나항공이 협찬해 준 왕복 항공권을 선물로 줬다.[2] 지금이야 누구나 항공권 구입이 편리하게 가능하지만 자니윤쇼가 방송되던 시절은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가 이뤄진 직후였으며 항공여행은 웬만큼 소득 수준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의 일이었기에 꽤 파격적인 경품이었다. 이 쇼 덕분에 당시 신생 항공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은 이때부터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고 아시아나항공 광고 모델로 섭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4. 종영

인기는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성적 코드나 자본주의적 욕망이 담긴 조크에 대해 사회윤리를 해친다며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늘어났고, 그가 사회의 높으신 분들을 건드리는 유머를 하면 편집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3]

이로 인해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먹은 일도 다반사였으며 퇴폐적인 내용과 국내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내용들로 인해 시청자들도 이탈하고 말았고[4] 결국 1990년 4월 5일, 정확히 1년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현재 KBS 영상자료실 내에는 얼마나 남아 있을지 불분명하지만 2019년 자니윤 사후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를 통해 추모 특집으로 일부 회차를 공개한 이래 'KBS 같이삽시다' 등지 여러 채널에 일부 업로드되었다. 후계작으로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SBS에서 방영한 <자니윤 이야기쇼[5]>와 iTV에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방송한 <쟈니윤의 What's Up?>[6]이 있다.

5. 여담



[1] 해외에서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오랫동안 영어를 구사하며 살아온 교포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어눌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만 16년을 운동선수로 살았던 박찬호도 발음이 약간 어눌한 편이다. '투 머치 토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을 잘 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달변가이지만 발음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셈이다.[2] 이 당시 자니윤은 시청자에게 항공권 경품 전달 사실을 고지할 때 "일본 주요 도시는 물론 국내 어~디에나 가실 수 있는 항공권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제선 항공권으로 갈 수 있는 지역이 일본으로만 한정됐던 것은 그 당시 아시아나항공에 부여된 운수권이 일본 노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미주 노선에 취항한 것은 자니윤 쇼가 없어진 1991년 10월의 일이었고 현재처럼 세계 주요 대륙을 오갈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3] 당시 '유머 1번지'나 '쇼 비디오 자키'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노태우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약속하면서 어느 정도 시사풍자가 허용되었고, 방송자유화가 노조 주도로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정부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들이 등장했음에도, 아직도 방송사 내에서 정권 눈치 보기적인 심의가 없지 않아 있었다. MBC 베스트셀러극장이 방송사 내의 일을 풍자하는 드라마를 내놓았다가 후폭풍이 불면서 한 동안 폐지되었다는 후문도 있다.[4] 예를 들어 자니 윤이 자니윤 쇼에서 한 조크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자기 아내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고 킬러를 고용했다. 킬러는 일을 해치운 뒤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원하시는 대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런데 증거는 완전히 없앴겠지?" "네, 완전히 인멸했습니다" "사용한 총은 어떻게 했나?" "거기 있는 스위밍풀에 던졌습니다" "응? 우리집엔 스위밍풀이 없는데?" "뭐라구요?" "주소 XXX가 485번지 맞아?" "네? XXX가 458번지 아니었나요?"[5] 그 쪽도 비슷한 이유로 종영되었다.[6] 이후 "쟈니윤 나이트쇼"로 변경.[7] 이미 종영 무렵 즈음에 MBC FM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MC로 활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