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자오즈민(焦志敏, Jiao Zhimin)[1] |
출생 | 1963년 12월 4일([age(1963-12-04)]세) |
헤이룽장성 이춘시[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3] |
학력 |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4] (중어중문학 / 제적) |
종목 | 탁구 |
가족 | 배우자 안재형, 아들 안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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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출신의 前 여자 탁구 선수다.한국의 탁구 선수 안재형과 결혼하고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해 현재는 한국 시민권자이다.
2. 수상 기록
올림픽 | ||
은메달 | 1988 서울 | 여자 복식 |
동메달 | 1988 서울 | 여자 단식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7 뉴델리 | 여자 단체전 |
은메달 | 1987 뉴델리 | 혼합 복식 |
동메달 | 1985 예테보리 | 혼합 복식 |
동메달 | 1985 예테보리 | 여자 복식 |
동메달 | 1987 뉴델리 | 여자 복식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1986 서울 | 여자 단식 |
은메달 | 1986 서울 | 여자 복식 |
은메달 | 1986 서울 | 여자 단체전 |
3. 여담
- 배우자인 안재형과는 1984년 혼합복식 대회에서 한중 대표로 서로 알게 되어 감정이 생겼는데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몰라서 연애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한중수교 전인 데다가 냉전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한국과 중국을 서로 방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혼전 중국에서 안재형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중국어로 썼고 안재형은 이를 해독할 수 없어서 당시 명동 중화민국(대만) 대사관 근처의 중국음식점에 가서 내용이 뭔지 물어봤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 1989년 한국의 전직 탁구 선수인 안재형과 국제결혼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두 사람의 아들 안병훈은 현재 골프 선수로 활동 중이다. 당시 한중 양국은 대표부조차 없는 미수교 상태였으나[5] 이미 중국이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둘 다 참가했을 정도로 예전보다는 관계가 개선된 상태였던데다 중국 정부에서도 국제 결혼을 허용했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자오즈민은 혹시나 한국으로 가는 순간 정치적 망명으로 간주되어서 다시는 고향 방문을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안재형과 함께 1989년 10월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에 방문했는데, 대사관 직원이 "이미 해외에 자유롭게 나왔기 때문에 (미수교국인) 한국으로 가더라도 향후 중국 입국에 문제가 없다."는 긍정적인 답을 해서 안심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 1989년 12월에 서울 올림픽공원 수변 무대에서 전통 혼례로 결혼식이 거행되었는데, 한중 양국의 관계 개선을 가늠할 수 있는 국가적인 이벤트이다보니 참가 하객이 기자 100여 명과 전현직 장차관 10여 명을 포함해서 무려 4천여명에 달했고 특히 체육부 장관의 축사에다가 당시 정부의 실세였던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을 대신해서 참석했다. 연애와 결혼 스토리는 안재형이 직접 출연해 언급한 영상이 있다.
- 자오즈민이 동메달을 딴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대회 혼합 복식에서 안재형은 동메달을 땄다. 당시 중국 팀과 한국 팀이 4강전에서 만났다고 한다.
- 당시만 해도 중국 내 조선족과 한국 남성 이미지는 상당히 나빴다고 한다. 결혼 후 자오즈민이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을 보면, 중국에선 조선족, 한국 남성이라고 하면 '직업도 가정일도 하지 않으며 아내를 구타하고 종처럼 부려먹는다'는 즉 남존여비 사상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처음엔 자오즈민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결혼을 허락한 뒤에도 주변 사람들이 '그 남자 재혼 아니냐'며 '뒷조사를 해보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딸이 혹여나 시댁에서 무시당할까봐 안재형이 넉넉한 집안이기 보다 가난한 집안이길 바랐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안재형의 부친은 부산 부민초등학교 교사였다.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한국을 열심히 응원했다가,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선 어느 나라도 응원하지 않는 등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다.
- 많은 관심을 받으며 광고와 예능에 출연했고, 1996년 KBS 일일드라마 며느리 삼국지[6]에서 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당시 자오즈민은 한국어 공부를 위해 드라마 연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해장국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한때 사업가로도 활동하는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했다. 비락 CF를 찍은 적도 있다.
- 1990년대까지 방송인으로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2000년대 이후 중국에 건너가 사업을 펼쳤고 중국에 체류하면서 남편 안재형과 20년간 따로 살았다고 한다. 2020년대 코로나 19 사태의 여파로 사업을 정리하고 2022년부터는 다시 남편과 만나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다.
- 빈번한 혐한 왜곡 보도의 피해를 본 사람인데, 2000년대 초반 한 중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혼 때문에 한국국적으로 귀화했지만 중국국적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노년은 중국에 돌아와 보내고 싶다."라고 한 기사를 기자들이 왜곡하여 한국을 비하했다고 보도를 했다. 엄연하게 외국태생으로 유년기를 거기서 지내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국수적인 기자들의 악의적인 보도로 혐한 중국인의 한 명처럼 보도된 것이다.
- 2021년 아들 안병훈의 미국 집을 소개하는 유투브에서 며느리, 손자와 함께 출연했다. 당시 남편 안재형은 2020 도쿄 올림픽 탁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 2022년 11월 <스타다큐-마이웨이> 322회에 남편 안재형과 함께 출연해 연애와 결혼 당시를 회상하고 근황을 공개했다.
- 신촌 연세대 앞 명물길에 아이핑퐁탁구클럽이란 이름의 탁구장을 열었다. 간판에 안재형&자오즈민이라고 쓰여 있다.지도
- 아들 안병훈에게 감기약을 잘못 줬다가 도핑 테스트에 적발되도록 하여서 3개월간 출전정지를 당하게 한 바 있다.# 물론 모르고 준 것이고 어머니의 마음으로써 아들에게 준 것이지만, 본인도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이고 즉 도핑에 몇 배는 예민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1] 한자음으로는 초지민.[2] #[3] 1980년대는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 체류하려면 한국 국적으로 귀화해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 법이 바뀌어서 굳이 국적을 바꿀 필요가 없어졌고 비슷한 예로 프랑스 국적이었으나 1990년대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국적으로 귀화한 이다 도시가 있다.[4] 1990년 2월 13일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아이를 가진 뒤에 휴학했다고 한다. 2005년 11월 26일 문화일보 기사에 복학하지 않았다고 한 것으로 봐선 아마 제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5] 1991년 1월에 와서야 무역대표부를 상호 설치했고, 1992년 8월에 정식 수교했다.[6] 한국인 세 아들과 한중일 세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 사는 내용인데, 맏며느리는 한국인인 임예진, 둘째 며느리가 자오즈민, 셋째 며느리는 이지은이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