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14 16:21:37

자유부인(영화)

자유부인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자유부인 시리즈
자유부인
(1956)
속편 자유부인
(1957)
자유부인
(1969)
자유부인 '81
(1981)
자유부인 2
(1986)
1990년 자유부인
(1990)


1956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1955년
춘향전
1956년
자유부인
1957년
속편 자유부인
}}} ||
<colbgcolor=#683235><colcolor=#fff> 자유부인 (1956)
Madame Freedom
파일:자유부인 포스터.jpg
원작 정비석
각본 김계향
감독 한형모
제작사 삼성영화사
제작 방대훈
기획 엄문근, 이래원
촬영 이성휘
조명 이한찬
편집 한형모
음악 김용환
출연진 박암, 김정림, 노경희, 주선태, 김동원
장르 드라마
개봉일자 1956.06.09
관람인원 150,000명
상영극장 수도극장
상영시간 124분

1. 개요 2. 상세3. 줄거리

[clearfix]

1. 개요

정비석 소설인 자유부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2. 상세

1956년 서울관객 15만[1]명을 동원한 화제작.그 해 국산영화 흥행 1위.워낙 대박이 난 작품이기 때문에 이후 자유부인에서 이름을 딴 'XX부인'이 성행하였으며, 속편과 리메이크가 제작되었다.[2]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불륜이라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3]

의외로 등록문화재 347호로도 지정되어 있는데,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등재 이유.

단순히 파격적인 내용으로 사회를 들썩이게 한 것만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 나간 편집, 연출 감각으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50년대의 사회 인식은 현대와 달리 가부장적인 인식이 지배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명망 있는 대학 교수의 부인이 춤바람이 나서 딴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내용 하나만으로도 컬쳐쇼크였다. 거기다 글로만 읽는 원작과는 달리 실제로 인물이 나와서 행동을 보여주는 영화로 나왔으니 원작보다 파급력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다만 결말 부분이 권선징악적으로 바뀌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작품답게 이 영화도 원작소설과 마찬가지로 비난이 쏟아졌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을 문제삼아 상영 금지 처분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초기 상영분에서는 키스신이 삭제되어 있다. 원작자 정비석은 이 작품으로 인해 친북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4] 잡혀가 고문까지 당하였다 이승만 정부 시대의 막장 인권 의식을 보여준 사건. 이승만 정권이 몰락 이후에는 종종 재상영이 되곤 했다.

3. 줄거리

대학교수인 남편(박암 분)과 초등학생인 아들을 둔 오선영은 평범한 가정주부. 오빠 오 의원의 정치자금을 대주는 한태석 사장은 선영에게 시내의 양품점을 맡아 보라며 권유하고 선영은 남편 장태연 교수에게 허락을 받는다.[5] 오빠의 집에 방문하려고 집을 나서던 어느 날, 선영은 거리에서 동창 최윤주(노경희 분)를 만나고 윤주는 선영을 명사부인들인 동창들로만 구성한 모임인 화교회에 데려간다. 화교회 모임 2차로 댄스파티가 이어지지만, 선영은 거절하고 동대문 오빠 집에서 양품점 주인 한태석 사장(김동원 분)을 만난다. 선영은 다음날부터 양품점에 나가 일하기로 하고 귀가를 서두르는데 오빠의 집 앞에서 조카 명옥과 옆집의 대학생 신춘호(이민 분)와 마주친다. 귀가길에 춘호와 대화를 나누던 선영은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춤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6]

한편, 장교수는 타이피스트 박은미(양미희 분)를 만난다. 은미는 장교수에게 회사 사원들의 한글교습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장교수는 기꺼이 승낙한다. 선영은 의외로 수완을 발휘해 양품점의 매상은 날로 오르고 한 사장 부부의 신임을 얻게 된다. 무역상인 백광진 사장(주선태 분)은 양품점의 단골이 된다.선영의 친구 윤주는 댄스 파트너인 백사장에게 속아 큰돈을 건네준다. 선영을 만난 윤주는 춤도 출 줄 모른다고 놀리고, 선영은 춤을 배우러 옆집청년 춘호를 찾는다. 장교수는 바깥일에 몰두해 집안을 돌보지 않는 선영이 못마땅하다. 한 사장은 선영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한다. 선영은 한사장에게 화교회 댄스파티에서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한눈을 파는 한 사장 때문에 화가 난 부인(고향미 분)은 장교수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 선영의 타락을 알리고, 장 교수는 편지를 찢어버린다. 백 사장은 사기죄로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윤주는 백사장과 엮여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명사의 부인이라는 점과 백 사장과의 불륜으로 크게 망신을 당한다.절망한 윤주는 화교회 댄스파티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다. 댄스파티에 가지 않고 호텔로 발걸음을 한 선영과 한사장은 호텔에서 아슬한 놀이에 빠지지만 한태석의 부인에게 발각되고, 선영은 뺨을 얻어 맞는다. 선영은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용서를 빈다. 장 교수는 문을 열어주지 않지만 아들 경수의 설득으로 마참내 아내를 용서한다.


[1] 단관상영 체제였던데다 서울 인구가 200만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라 엄청난 대박이었다.[2] 이듬해 개봉한 속편은 초대박 흥행하지는 못했다.[3] 거의 한국 최초의 막장 영화라고 봐도 될만큼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4] 정작 정비석 본인은 황해도 출신 지주로 공산당한테 재산을 빼앗기고 월남하여 강력한 반공주의 성향을 지닌 우익 인사였다.[5] 당연히 남편 장 교수는 대학교수 부인이 양품점 점원이 웬 말이냐며 마땅치 않게 여기지만, 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선영의 설득과 양품점 주인이 선영의 오빠와 잘 아는 한태석 사장이라는 말에 마지못해 승낙한다.[6] 선영의 옆집에 세들어사는 신춘호는 대학생이지만, 공부보다는 가무에 취미가 있는 듯하며 다소 불량스러운 데가 있다, 영화 초반에도 밤에 레코드를 틀어놓는 경우없는 행동을 하여 글을 쓰던 장 교수를 언짢게 한다. 춤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선영의 조카인 명옥과 자주 어울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