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영화 | |||
청춘의 십자로 | 미몽 | 자유만세 | 검사와 여선생 |
마음의 고향 | 피아골 | 자유부인 | 시집가는 날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
검사와 여선생 (1948) 檢事와 女先生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 | 윤대룡 |
원작 | 김춘광[1] |
각색 | 이동하 |
제작 | 곽점영 |
기획 | 김영순 |
제작사 | 조선영화공사 |
촬영 | 박희영 |
조명 | 최성완 |
미술 | 원우전 |
변사 | 김춘광 → 신출 |
출연 | 이영애, 김동민, 이업동, 신일천 |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
개봉일 | 1948년 6월 5일[2] |
[clearfix]
1. 개요
김춘광[3]의 동명의 신파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윤대룡 감독의 1948년 개봉 영화.이 영화가 갖는 영화사적 의미는 한국 영화 최후의 무성영화이자[4], 마지막 변사 공연작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당시에는 '현존하는 유일한 무성영화'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무성영화인 《청춘의 십자로》(1934)가 발견되어 복원 작업을 거쳐 2008년 공개되고 2012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이 기록은 지워졌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1948년 서울의 전차, 철도, 골목, 책방, 법정 등 도시 풍경을 영상으로 담은 기록적 가치도 인정된다.
인기 변사 출신이기도 한 원작자 김춘광이 이 작품의 변사를 맡아 전국을 누볐으며, 1949년 7월 김춘광이 사망하자 '마지막 변사' 신출이 필름을 인계받아 지방 흥행을 하다가 영화진흥공사 필름보관소(현 한국영상자료원)에 필름을 기증했다.
우미관 개관 35주년 기념 특별 공연작이자 문교부 추천영화.
윤대룡 감독의 데뷔작으로, 윤대룡 감독은 1958년에 다시 리메이크한 바 있다.
1960년대에 최고 인기 영화배우가 되는 신영균의 비공식적 데뷔작이다. 신일천이라는 예명으로 출연하여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는 공식적으론 1960년 영화 '과부'를 데뷔작으로 친다.
2. 줄거리
주인공 영애는 탈옥수를 집안에 숨겨준 일이 남편에게 탄로나 오해를 받는다. 흥분한 남편은 칼부림하여 아내 영애를 죽이려다가 자신의 실수로 자기가 죽고 만다. 영애는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죄로 검찰에 송치된다. 이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검사는 뜻밖에도 영애가 옛날 학교 선생 시절 극진히 돌봐주었던 바로 고학생 그사람이었다. 검사는 옛날 일을 생각하자니 여선생 영애를 풀어놓아 주고 싶었으나 법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입장은 그런 사견을 의식할 수는없었다. 법은 준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영애의 증언을 듣고 알리바이도 찾는 한편 이 사건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한가지도 놓치지 않고 방증 자료로 수집하여 사건의 실마리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풀어나가기 시작해 결론에 도달했다. 흥분한 남편이 상대방 영애를 죽일 작정으로 칼을 들고 덤벼들다가 피하는 영애의 옆으로 나뒹굴어 넘어지면서 제가 쥐고 있던 칼로 배를 찔려 죽은 것. 무죄로 풀려나는 영애, 옛날을 생각하며 은사를 향해 속으로 울고 있는 검사와 흐느끼는 방청석, 숙연한 재판장.3. 리메이크
1958년과 1966년 두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3.1. 검사와 여선생(1958)
검사와 여선생 (1958) 檢事와 女先生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각색 | 윤대룡 |
원작 | 김춘광 |
제작 | 윤상룡 |
기획 | 이종철, 허영 |
촬영 | 장환 |
조명 | 윤영운 |
음악 | 김대현 |
미술 | 갈이준 |
출연 | 윤인자, 이향, 이룡 |
제작사 | 삼화영화사 |
개봉일 | 1958년 8월 15일 |
개봉관 | 국도극장 |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에 나어린 민영준(이향 扮)은 새벽이면 신문을 돌리고 밤이면 궤짝을 어깨에 메고 찹쌀떡을 팔면서 병석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봉양하며 낮에는 학업을 닦고 있을 때 이것을 안 영준의 담임선생인 서진숙(윤인자 扮)은 그를 친아들처럼 극진이 사랑하며 돌보아주고 있었다. 때로는 병석에 누운 영준의 할머니를 찾아와 병간호도 해드리고 영준이가 학교에 점심을 못가져오면 자기의 점심까지 나누어 주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영준을 성공시키려고 노력하던 중 뜻하지 않게도 서진숙은 학교직을 그만두고 시골로 떠나게 된다. 친어머니처럼 믿어오던 여선생이 떠나는 날 영준은 눈물이 나옴을 억지로 참으며 부두로 달려가 기선으로 떠나는 선생을 전송할 때 진숙은 영준에게 고히 간직했던 저금통장을 주면서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남기고는 기선에 몸을 싣고 멀리 떠난다. 그러나 이야기는 15년이 지난 후 어느날 밤부터 시작된다. 살인모의로 미결수로 있다가 탈옥을 한 박만종(이룡 扮)은 엄격한 경계망을 뚫고 이리저리 숨어다니다가 때마침 지나는 행인이 옛 친구인 민영준임을 알고 반가워 했으나 그가 검사임을 알게 되자 그를 피하여 다시 도망가다가 어느 집으로 뛰어들어 부인을 협박하고 숨을 곳을 강요한다. 허나 그 집이 어렸을 때 자기를 가르쳐주던 은사의 집일 줄이야! 얼마 후 경관들이 그 집을 포위했을 때 만종은 그 집 부인이 은사임을 알았고 자기 잘못을 깨달은 그는 순순히 잡히고 만다. 그러나 운명이란 기구한 것인지 박만종은 마약밀수단의 두목인 최종악의 부하였으며 최종악은 만종의 은사인 진숙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만종이 다시 잡혔음을 안 최종악은 그가 자기 부인의 제자인 데서 혹시 자기가 살인을 하고 만종에게 뒤집어 씌웠던 비밀을 누설시켰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부인과 언쟁 끝에 식도로 부인을 협박하다가 실수하여 자신이 찔려 즉사하고 만다. 한편 영준도 만종이 은사의 집에서 잡혔음을 알고 진숙의 집에 찾아갔을 때는 진숙은 살인범으로 경찰에 잡혀간 후였다. 은사가 살인범이 되었다는 데서 고민하던 영준은 마침내 검사직을 사직하고 변호사로서 은사를 위하여 활약한다. 드디어 공판 날은 왔다. 판사는 진숙에게 무죄를 선고한다.[5] |
3.2. 민검사와 여선생(1966)
민검사와 여선생 (1966) 閔檢事와 女先生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각색 | 전범성 |
원작 | 김춘광 |
제작 | 홍의선 |
기획 | 한갑진, 전옥숙 |
촬영 | 전형배 |
조명 | 박창호 |
편집 | 권혁규 |
음악 | 백영호 |
미술 | 박석인 |
출연 | 김지미, 김석훈, 서영춘, 도금봉, 조항 |
제작사 | 대한연합영화사 |
개봉일 | 1966년 8월 13일 |
박양춘(김지미 분)은 초등학교 교사로 정이 많아서 학생들을 세심하게 돌본다. 박양춘이 담임으로 있는 반의 민장손(아역-노도원 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병든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아침에는 신문을 돌리고 밤에는 찹쌀떡을 팔아가며 산다. 장손은 도시락이 없어 뚝배기에 점심을 싸가고 아이들이 놀리자 울며 교실을 뛰쳐나간다. 박양춘은 도시락을 사가지고 장손의 집으로 가 장손을 달랜다. 이후 박양춘은 장손의 아픈 할머니를 손수 간호하기도 하고 직접 과외공부를 해주며,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둘러주는 등 장손을 극진히 돌봐준다. 세월이 흘러 박양춘은 학교를 그만두고 선장(조항 분)과 결혼을 한다. 박양춘은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우연히 어린 장손을 도와주곤 했던 쌀집 이씨(서영춘 분)를 만나게 된다. 박양춘은 이씨에게 장손의 소식을 물어보나 6.25 이후 소식을 알 길이 없어졌다고 한다. 떡장사 천안댁(도금봉 분)은 박양춘의 남편이 성미가 깐깐하고 남한테 실수하는 법이 없이 너무 정직하고 꼿꼿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남편은 출항으로 떠나고, 박양춘은 홀로 집을 지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살인강도 죄수가 탈옥을 해 양춘의 집으로 숨어 들어온다. 마음이 약한 양춘은 탈옥수(최성호 분)의 사정을 듣고 그를 찾으러 온 경찰에게 그를 넘기지 못한다. 양춘은 한번만 딸을 만나게 해달라는 탈옥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딸을 데리고 와서 부녀 상봉을 돕는다. 양춘을 미행한 경찰에 의해 탈옥수는 잡혀가고, 양춘은 탈옥수의 딸을 돌봐준다. 양춘이 탈옥수와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이 돌고, 이 소문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까지 들어간다. 술에 취한 남편은 양춘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다그치며 총까지 들이댄다. 양춘은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하지만 남편은 믿지 않는다. 흥분한 남편은 실수로 자기 총에 맞아 죽고 양춘은 살인죄로 검찰에 송치된다. 담당검사는 공교롭게도 예전 양춘이 돌봐주었던 민장손(김석훈 분)이다. 장손은 선생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검사직을 사퇴하고 변호사가 되어 양춘을 변호한다. 양춘의 은혜를 입은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판이 시작된다. 민장손은 자신을 도와주웠던 양춘이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를 리 없다며 감동적인 변호를 한다. 양춘은 민장손의 도움으로 무죄로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장손은 선생님의 목에 목도리를 해준다.[6] |
[1] 본명 김조성[2] 1948년 6월 5일 우미관에서 개봉한 것이 확인되나# 이것이 최초 개봉인지는 불명하다. 1948년 4월 19일 경상도의 시민극장에서 "경상남북도 첫 대개봉"이라며 개봉한 기록이 있으며(남선신문 1948년 4월 18일자), 현대일보 1948년 2월 7일자와 대한일보 1948년 2월 8일자에서 촬영을 마치고 3월 1일경 중앙 개봉 예정임을 알리는 기사가 났기 때문이다. 다만 3월 1일에 실제 개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3] 개명 전 이름은 김조성으로, 초기에는 변사로 활약했으며 춘향전을 최초로 영화화한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의 배우로 출연하고 해설도 담당한 바 있다.[4] 이두용 감독의 2003년 개봉작 《아리랑》도 흑백 무성영화지만, 현대에 무성영화를 재현한 것이기에 최후의 무성영화라 보기 어렵다.[5] 출처: 영화세계 1968년 9월호[6] 출처 - K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