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향 李鄕 | Lee Hyang | |
본명 | 이근식(李根植, Lee Geun-sik) |
출생 | 1914년 2월 8일 |
경기도 경성부 동부 내교동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 |
사망 | 1991년 7월 29일 (향년 77세) |
본관 | 전주 이씨[1]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슬하 4남 3녀 3녀 이희경[2], 외손자 문희준 진외증손녀 문희율, 진외증손자 문희우 |
학력 | 주교공립보통학교 (졸업) 경신학교 (전학)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 (상과 / 중퇴) |
경력 | 극단 낭만좌 단원 극단 협동예술좌 단원 극단 고협 단원 국립극장 전속배우 |
영화 데뷔 | 1948년 《밤의 태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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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연극 및 영화 배우. 가수 문희준의 외할아버지다. 필모그래피2. 상세
1914년 2월 8일 경기도 경성부 동부 내교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나 9살 때까지 강원도[3] 홍천군 서면 동막리에서 성장했다.[4] 일본인을 상대로 모피 장사를 하며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랐다. 주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신학교에 진학했으나 2학년 때 배재고등보통학교의 축구선수로 스카우트되었다. 그 뒤 연희전문학교 상과 별과[5]에 입학했으나 축구선수도 그만두었고, 학교마저 2학년 때 중퇴하였다.극단 낭만좌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고 이 무렵 "고향을 그리듯이 조국을 잊지말라"는 의미로 선배가 지어준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1948년 박기채 감독의 《밤의 태양》에서 '7'이라는 별명의 불량배 역으로 데뷔했다.
1954년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에서 배우 윤인자와의 키스 장면을 촬영했는데 이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 신으로 기록되었다. 키스래야 사실 입술만 살짝 닿는 정도의 수준인데 이 장면을 찍기 위해 감독은 1주일간 윤인자를 설득했다고 한다.
1984년 마지막 출연작인 최하원 감독의 《초대받은 성웅들》까지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완용 전문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1959년 신상옥 감독의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1966년 이규웅 감독의 《마지막 황후 윤비》, 1972년 주동진 감독의 《의사 안중근》 등 총 6편의 영화에서 이완용을 연기했다.
1991년 7월 29일 알츠하이머로 인해 사망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