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15:01:31

작진


국적 신라
이름 작진(酌珍)
관등 각간(角干)(?)
성씨 이(李)?
아내 왕교파리(王咬巴里)

1. 개요

신라의 인물. 삼국유사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만 등장한다. 아자개의 아버지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할아버지.

2. 가계

이제가기에 의하면 그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적어도 진흥왕 & 백숭부인[1]김구륜 → 김선품까지는 연대와 계보가 그럭저럭 맞아들어가는 것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김선품의 딸이 문무왕의 처 자의왕후로 7촌혼이 되며, 문무왕의 조부 김용수천명공주와 5촌혼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흥왕과 아자개의 활동시기가 300년 넘게 차이 나는 걸 보면 김선품 → 작진의 연결성은 상당히 신뢰도가 떨어지며, 작진 & 왕교파리 → 아자개까지 연결 또한 정말로 그랬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나는 게 사실이며, 당연히 어느 정도 술작은 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도 상당히 어설프고 백제와의 연결성도 따지고 따져봐야 무려 수백 년 전 조상 할머니인 백숭부인에서 끝나서 그냥 내세우면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견훤 일가가 이걸 대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했을 가능성 또한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진흥왕의 부인 백숭부인과 작진의 부인 왕교파리는 여성인데도 굳이 가계도에서 언급하는 걸 보면 상당히 신분이 높은 집안 딸로서 아자개와 견훤 일가 가계도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생략된 인물이 대단히 많고, 그중에 중요한 인물이 작진과 왕교파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측이 되겠다. 작진이 선품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아자개의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아자개가 김씨는 아니고 이씨였던 이상 아자개로부터 김선품까지 부계 직계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분명 어려운 상황이니, 작진이 아닌 왕교파리 측이 선품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각간이라는 관등은 신라 17관등 중 1관등인 이벌찬의 이명이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통일신라가 몰락하기 전에도 지방의 유력 호족들이 신라 조정의 허락 없이 각간을 자칭하기도 했던 걸 고려하면 작진도 그런 케이스일 수도 있다. 다만 고구려계 호족들과 달리 상주 일대는 신라 김씨 왕조 친위대 출생지로서 엄중히 관리되었음을 고려하면 작진은 구륜의 후손들이 서라벌에서 몰락하기 전 위세를 떨친 진골 김씨이자 아자개의 조상 할머니인 김씨녀의 조상이었을 수도 있다.

3. 기록

李碑家記云, “真興大王妃思刀謚曰白𪀚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 波珎干善品之子角干酌珎妻王咬巴里, 生角干元善, 是為阿慈个也. 慈之弟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尚父萱, 二子将軍能哀, 三子将軍龍盖, 四子寳盖, 五子将軍小盖, 一女大主刀金.”
≪이비가기(李碑家記)≫에는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白𪀚夫人)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阿慈个)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尙父)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蓋)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蓋)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1] 소비 부여씨일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