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관선(張寬善) |
생몰 | 1866년 5월 5일 ~ 1938년 5월 9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면 동부동 |
사망지 | 만주 화룡현 대황구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목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관선은 1866년 5월 5일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면 동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4월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재학하던 중 신민회에 가입해 평안북도 지회에서 활동했다. 190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예수교 전도사가 되어 철산에서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교육구국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해 신민회 회원들을 대거 체포할 때, 그 역시 일제 관헌에게 체포되었고,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언도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고, 1913년 3월 20일 공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이후 1919년 3.1 운동이 벌어지자 철산군에서도 3월 7일에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장관선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당국의 수사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통화현, 진두하에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을 위한 육영사업을 추진하면서 신흥무관학교 및 독립군에게 자금을 조달했다.
1923년에 화룡현 대황구에 이주한 뒤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고 농장 경영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했으며, 1927년엔 카이위안, 톄링, 잉커우 등지를 전전하며 동포들에 대한 교육구국운동에 종사했다. 1938년 5월 9일 만주 화룡현 대황구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장관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0년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