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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00:29:47

철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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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山郡
Chŏlsan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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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재지 <colbgcolor=#fff,#000000> 철산읍
지역 관서
면적 455.5㎢
하위 행정구역
읍 2로동자구 1리
인구 85,525명[A]
인구밀도 1,996.37명/㎢
책임비서 파일:wpk.jpg
인민위원장 파일:wpk.jpg

1. 개요2. 상세3. 군사4. 자원5. 여담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7. 출신 인물

1. 개요

북한 평안북도에 있는 지역.

2. 상세

발해 멸망 이후 한동안 여진족이 돌아다니던 곳이었지만,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의 침공 당시 고려측 서희와의 협상으로 압록강 동쪽 280리 땅의 지배권에 대한 동조를 얻어낸 뒤 고려 조정이 이듬해부터 이 일대의 여진족을 소탕하고 점진적으로 성을 쌓고,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여섯 개의 주를 설치했다. 이른바 강동 6주이다. 이후 거란이 강동 6주를 내놓으라고 주장했지만 고려는 상큼하게 무시했고, 대대적인 거란의 침공마저도 모두 격퇴해 내는데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고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광복 당시 면적 455.5 ㎢, 철산(鐵山)·백량(柏梁)·부서(扶西)·서림(西林)·여한(餘閑)·참(站)의 6면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철산면 중부동이었다. 참면, 서림면을 경의선이 지나고, 앞바다는 갯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도(假島)·탄도(炭島)·대화도(大和島) 등 섬이 많다.

워낙 외진 곳이라 1970년에 조선인민군 특수부대가 한국군으로 위장하고 상륙훈련을 했는데 이를 본 주민들 중 일부가 한국군이 진짜로 온 것으로 착각하고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환영하는 바람에 주석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황을 오해한 주민들은 당연히 요덕으로...[2]

고려 시대 제1차 몽골 침공 당시 철주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조선 시대에는 명의 모문룡이 이곳의 가도[3]를 불법 점거하기도 했다.

구한말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조선혁명군 사령 양세봉(1896~1934)[4]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105인 사건에도 가담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김창숙 등과 함께 야당 활동을 하면서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맞섰던 이명룡(1873~1956),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해방 이후 독립노동당을 창당해 활동하고 신민당 운영위원으로도 활약했던 운암 김성숙(1898~1969)이나 한국광복군 제3지대 본부 부관실 부관주임으로 1992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장호강(1916~2009) 역시 철산 출신이다.

3. 군사

4. 자원

5. 여담

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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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철산군기.webp[7]
파일:철산군.jpg
<colbgcolor=#14223F><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철산면 중부동
상위 행정구역 평안북도
하위 행정구역 6
면적 455.5km²
인구 85,525명(2008년)
인구밀도 1,996.37/㎢(2008년)
명예 군수 전성덕 (제22대)
명예 읍면장 6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철산군 소개

7. 출신 인물

실향민, 1953년 정전 협정 체결 이전(1953.07.27)에 태어난 사람에 한하여 작성할 것.


[A] 통계청 북한통계(2008년).[2]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북한 정권의 통치가 결코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3] 조선 조정이 말을 풀어 기르는 목장[4]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양세봉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북한 정권의 김일성은 양세봉의 아들들을 북한에서도 특권층만이 살 수 있는 도시인 평양으로 이주시켜 살게 해 주기도 했다. 남한의 국립서울현충원과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모두 묘가 조성되어 있는 등(물론 남쪽이 가묘), 양세봉은 사실상 남한과 북한 모두가 공통되게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으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5] 1949년에 면 산하의 동을 리로 개편하면서 동창동에서 동창리가 되었고,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장야리, 장평리를 병합하였다. 따라서 지금의 동창리는 광복 당시의 동창동, 장야동, 장평동에 해당한다.[6] 椵島. 철산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말을 기르는 목장이었다. 후금이 일어나자 명나라모문룡이 이 곳으로 쫓겨와 점거를 하기도 했었다.[7] 2019년까지 쓴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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