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츠빌 시티 FC | ||
Huntsville City Football Club | ||
<colbgcolor=#0e1144> 이름 | 잭 콜리슨 Jack Collison | |
본명 | 잭 데이비드 콜리슨 Jack David Collison | |
출생 | 1988년 10월 2일 ([age(1988-10-02)]세) / 잉글랜드 하트퍼드셔주 왓포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웨일스|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 |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0e1144> 선수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2007~2014) → AFC 본머스 (2013 / 임대) → 위건 애슬레틱 FC (2014 / 임대) 입스위치 타운 FC (2014)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2015~16) |
감독 |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2015~17/U-18 코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7~19 / U-16 감독)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 (2019~20 / U-17 코치) 애틀란타 유나이티드 FC 2 (2020~2023 / 감독) 헌츠빌 시티 FC (2023~ ) | |
국가대표 | 15경기 0골(웨일스 / 2008~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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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포지션은 미드필더.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27세의 나이로 일찍 마감했다.
2. 클럽 경력
2.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11-12 시즌, 팀의 승격을 함께한 잭 콜리슨 |
지역클럽 셰포드 세인트에서 축구생활을 시작해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캠브릿지 유나이티드 FC에서 뛰었다. 하지만 캠브릿지가 프로 리그 레벨에서 강등된 후 유소년 조직을 해산시켰고 콜리슨은 다른 클럽을 찾아야했다. 17살 웨스트햄에서 테스트를 제안받았고 아카데미 감독인 토니 카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2007-08 시즌, 웨스트햄 2군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점점 기량을 향상시켰다. 21R 아스날전, 부상당한 프레디 융베리를 대신하여 교체 출장하면서 1군 데뷔를 했다.
2008-09 시즌, 앨런 커비실리 감독은 콜리슨을 본격적으로 1군에 합류시켰고 이후 지안프랑코 졸라 감독이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스쿼드 멤버로 뛰게된다. 리저브팀에서 뛸 때는 주로 중앙 미드필더에서 뛰었지만, 졸라 감독은 미드필드 다이아몬드 왼쪽에 기용하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3-1로 패한 13R 에버튼전, 프로 데뷔골을 넣었다. 28R 위건 애슬레틱 FC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고, 이 부상이 사실상 선수 생활을 끝내는 부상이 되었다. 시즌 총 23경기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웨스트햄 올해의 영 플레이어로 선정되었다.
2009-10 시즌, 2R 토트넘와의 경기 중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틀 후 벌어진 라이벌 밀월과의 경기에서 팀 동료들이 검은 완장을 착용한 채 경기를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졸라 감독은 콜리슨의 인간성과 프로정신을 칭찬했다. 지난 시즌 겪은 무릎부상이 또 도져서 3월부터 아웃되었고 수술이 확정되었다.
2010-11 시즌을 부상 재활로 인해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했다. 팀은 강등 벼랑 끝까지 몰린 상태였고 시즌 극후반 스쿼드에 복귀했다. 37R 위건 애슬레틱 FC 원정에서 첫 선발로 들어가 플레이했지만 3-2로 패하면서 강등을 막지 못했다. 당시 웨일스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많은 팀원들은 챔피언십에서 경험한 적이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2011-12 시즌과 함께 웨스트햄에는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부임했고, 콜리슨과 제임스 톰킨스는 따로 빅샘을 만나 구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들었다. 콜리슨은 이미 2번은 강등을 겪었지만 부상 때문에 팀에게 도움을 주지 못 했고 본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리그 경기만 46R가 있는 챔피언십 리그는 콜리슨에는 무리한 일정이었고, 폼을 찾았다고 느낄 때면 다시 무릎이 말썽을 부리며 시즌 대부분이 무릎 회복과의 전쟁이었다. 카디프 시티와의 플레이오프 준결승 1차전에서 2골을 넣으며 3-0 대승을 이끌었고, 2차전에서도 선발로 나서 2-0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때 무릎 부상을 다시 당했고, 교체되어 나갈 때 걸을 수도 없었다. 결승전에 뛰기위해 열심히 회복에 전념했고, 블랙풀 FC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무리없이 90분을 다 뛰며 승격을 확정지었다. 시즌 35경기를 뛰며 6골 3도움을 기록했고, 콜리슨 커리어에서 가장 많이 뛴 경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시즌이 되었다.
2012-13 시즌, 프리시즌에서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 절반을 날렸다. 크리스마스 기간이 지난 후 모하메드 디아메, 리카르도 바즈 테, 요시 베나윤이 부상당한 상황에서 콜리슨의 복귀는 큰 힘이 되었지만,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철저히 교체 선수로만 활용했다. 더이상 측면 자원으로 뛸 수 없어 남은 경기의 대부분을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다.
2013-14 시즌, 시즌 초반 또 무릎때문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10월 한 달 동안 AFC 본머스에 임대되었고 4경기 풀타임 출전했다. 다시 스쿼드에 들어왔지만 교체선수로만 활용되었고 겨울이적시장에서 챔피언십에 있는 위건 애슬레틱 FC와 6개월 임대계약을 맺었다. 위건에서 총 10경기를 뛰었지만 여전히 예전만큼 폼이 올라오지 않았다. 시즌이 끝난 후 웨스트햄은 계약 연장을 제의하지 않으며 그대로 방출되었다.
2.2. 입스위치 타운 FC
2014-15 시즌 초 입스위치와 단기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무릎 부상이 회복되지 않으며 6개월을 그대로 회복에만 보냈다. 입스위치는 계약연장을 하지 않으며 그대로 방출되었다.<rowcolor=#ffffff> 입스위치 타운 FC | ||||
<rowcolor=#ffffff> 시즌 | 출장 | 득점 | 도움 | |
2014-15 | 0 | 0 | 0 | |
<rowcolor=#ffffff> 총계 | 0 | 0 | 0 |
2.3.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2015-16 시즌, 콜리슨은 축구 학교에 다니며 코칭을 배우고 있었고 또 축구 기자와 방송 관련 공부를 하며 학위를 취득 중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프로에 도전한 후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본인이 유소년 시절 몸담았던 클럽이자, 리그 원에 소속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는다. 시즌 초 교체선수로 12경기 정도 가끔 나왔지만, 무릎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2016년 2월, 27살의 나이에 공식적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rowcolor=#ffffff>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 ||||
<rowcolor=#ffffff> 시즌 | 출장 | 득점 | 도움 | |
2015-16 | 12 | 0 | 1 | |
<rowcolor=#ffffff> 총계 | 12 | 0 | 1 |
3. 국가대표 경력
잉글랜드 왓포드에서 태어났지만 외할아버지가 웨일스 혈통이라 웨일스 대표팀 자격이 있었고, 결국 웨일스를 선택했다. 당시 웨스트햄 팀 동료이자 전 웨일스 주장인 크레이그 벨라미는 웨일스 청소년 코치인 브라이언 플린에게 콜리슨의 실력을 보고했다. 플린은 그를 관찰한 후 UEFA 유럽 U-21 챔피언십 예선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맞붙을 선수단으로 뽑았다.2007년 11월, 콜리슨은 그 경기에서 웨일즈 U-21 대표팀에 데뷔하여 4-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득점했다. U-21에서 그는 아론 램지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웨일스의 핵심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UEFA 유럽 U-21 챔피언십 진출엔 실패했다.
2008년 아이슬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웨일스 국가 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커다란 무릎 부상 이후, 클럽에서 계속해서 선발에서 제외되었지만 대표팀에는 꾸준히 합류했다. 2014년 아이슬란드와의 교체출장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여정은 막을 내렸다.
4. 지도자 경력
피터버러 선수 시절부터 U-18 팀을 코칭했으며 은퇴한 후에도 역할을 계속했다.2017년 7월, 웨스트햄 아카데미에 합류하여 U-16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9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가 MLS 팀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 코치를 시작해, 리저브 팀 감독, 애틀랜타 2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23년 1월 18일, 헌츠빌 시티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5. 무릎 부상
2008-09 시즌, 27R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친 후 3일 만에 선수 생활 최악의 부상을 입게 된다. 28R 위건전에서 골키퍼 로버트 그린이 길게 찬 킥을 트래핑하다 착지를 잘못해 그대로 무릎이 비틀렸고 바로 교체아웃되었다.다음 날, 검사를 위해 스페인으로 갔는데, 클럽 팀탁터가 본인 무릎보다 스페인으로 가는 거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선수 커리어를 좌지우지할 최악의 진단을 내리게 된다. 6주의 회복 기간을 가진 후 콜리슨을 복귀시켰고, 시즌이 끝나기 전 4경기를 더 뛰게 했다. 다음 09-10 시즌까지 23경기를 더 뛰었고 무릎은 더 악화되었다. 물론 경기를 뛸 때도 무릎은 안좋았다. 훈련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리그 경기만 뛰고 있었다. 결국 시즌 중 감독에게 몸 상태를 말하고 수술을 결정했다. 그때는 본인 선수 생활에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며 의사가 말하는 진단과 본인이 느끼는 무릎 이상이 너무 달랐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수술을 받고 14개월 동안 밤낮으로 재활에 전념했다. 복귀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을 당했었던 위건과의 경기였다. 그리고 사실 이때도 복귀가 급한 감이 있었다. 팀의 강등과 잔류가 결정되는 리그 막바지였다. 급하게 폼을 올려 출전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복귀 후 더는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할 수 없었다. 경기를 뛰어도 며칠간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3일 간격으로 열리는 경기들은 참가조차 할 수 없었다. 훈련 중에도 무릎 때문에 전체 세션을 소화하지 못하며 재발-회복의 반복이었다. 결국 20살에 당한 부상과 그 이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조기 복귀를 하는 바람에 고작 27살의 나이로 선수 은퇴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6. 플레이 스타일
갓 1군에 데뷔했을 때는 웨스트햄 아카데미 졸업생 마이클 캐릭과 비교되었다. 패스 정확성이 높고 공을 다루는 기술이 좋으며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침착성을 잃지 않는 점을 강점으로 인정받았다. 무릎 부상을 입고도 사이드에서 플레이 했을 만큼 속도도 좋았다. 페널티 박스 바깥 지역에서 패스를 주고 돌아나가는 움직임은 프랭크 램파드의 경기 영상을 보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7. 기록
7.1. 출전 기록
7.2. 대회 기록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 풋볼 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 2012
7.3. 개인 수상
- 웨스트햄 올해의 영 플레이어 : 2008-09
- 런던 올해의 영 플레이어 : 2009
8. 여담
- 잭 콜리슨 축구 학교를 운영중이다.[1]
- 본인 경력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크레이그 벨라미라고 한다. 웨일스 대표팀과 웨스트햄 시절까지 꾸준히 챙겨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 2009년 영국 일간지 The Times 선정 떠오르는 축구스타 50인 중 29위에 선정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