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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저메인 데포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1.1. 유소년 시절
11살 때 우연히 세인트 요아임 학교 운동장 근처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동급생을 보게 되고 흥미를 보인 데포는 학교 끝나고 매일 30분씩 축구를 하고 올 만큼 좋아했다. 한창 축구를 열심히 하고 있던 도중 한 스카우트의 눈에 띄게 된다. 찰튼 애슬레틱 FC 유스에 들어가며, 데뷔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서 치렀고 이후 2004년까지 뛰었다.1.2. 토트넘 홋스퍼 FC
웨스트 햄이 직전 시즌 18위로 강등 되었고 2003/04 시즌 시작 전 재계약을 제의 하지만 데포가 거절하였고, 퇴장 3회 등 징계 등으로 결장이 많아지자 2004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600만 파운드와 바비 자모라 가 웨스트 햄으로 가는 조건에 토트넘으로 이적하게 되었다.약 4년 동안 토트넘에서 뛰며 토트넘의 5위 돌풍을 이끄는 등 활약했던 데포는 이 때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05-06 시즌 전까지 토트넘의 주전 투 톱은 로비 킨과 저메인 데포였고 미도가 잠시 맹활약을 보여 데포가 밀린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데포는 주전 자리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06-07 시즌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오게 되고, 베르바토프가 바로 리그 적응을 완료하는 것으로 모자라 로비 킨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면서 결국 데포는 3옵션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07-08 시즌에는 대런 벤트까지 영입하게 되자 데포의 자리는 벤치에도 없던 격이었다.[1] 결국 당시 후안데 라모스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07-08 겨울 이적 시장 때, 자신의 스승인 해리 레드냅 감독이 지휘하고 있던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2] 포츠머스에서는 피터 크라우치와 함께 투톱으로 활약하며 포츠머스의 돌풍을 이끌었다. 이후, 레드납이 08-09 시즌 중에 토트넘으로 이적했는데 데포는 다시 한 번 레드납의 부름을 받아 겨울 이적 시장 때 다시 토트넘으로 돌아온다.
09-10 시즌에는 이적생이자 포츠머스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던 크라우치와 함께 투톱으로 활약하며 토트넘의 빅4 진입에 공헌했다.
특히 이 시즌엔 토트넘 시절중 가장 활약이 좋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리그 2라운드 헐 시티 원정경기에서 헤트트릭을 하였으며 FA컵 리즈와의 재경기에서도 헤트트릭을 하였다.
09년 11월 22일 리그 13라운드 위건과의 홈 경기에서는 무려 5골이나 득점하였으며 팀은 무려 9대1 대승을 거두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극심하게 부진했던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들 중 유일하게 골을 넣었다. 다만 그 역시 다른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들처럼 국가대표팀 활약상은 좋지 않은 편이다.
10-11 시즌에는 리그 초반부터 3개월 짜리 장기부상을 찍어버렸으며, 복귀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긴 했으나 리그 0골이라는 욕먹어도 할말 없는 스탯을 찍고 있다. 심지어 페널티킥마저 실축. 사실 그 뿐만 아니라 토트넘의 현 스트라이커들이 다 스트라이커답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토트넘은 겨울 이적 시장 동안 스트라이커를 찾느라 고군분투했으나 현실은 거절햄(…). 울버햄튼전에서 2골을 기록하였고 그 경기에서 나름 잘해줘서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그 이후의 행보가... 특히 웨스트햄전에서는 정말 떠 먹여 줘도 못 받아 먹는 한심한 결정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안 깔래야 안 깔수가 없는 한심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겨우 리그 2골을 기록하다 4월 23일 웨스트 브롬위치 전에서 간신히 골을 기록하며 살아나는 듯 했으나 시즌 후반까지 별다른 활약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미래를 그려야 했다.
11-12 시즌은 임대로 영입된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에게 밀려 리그에선 주로 교체멤버로 나왔으며 유로파리그나 컵 대회해서는 선발돼서 나왔다.
FA컵 스테베니지와의 재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멀티골을 득점하였다.
그리고 12-13 시즌 들어서 새로 부임한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전술에서 원톱 역할에 들어가게 되면서 다시 기세가 살아나는 중. 투톱 시절에는 보여주지 못했던 공을 지켜내거나 수비들을 끌어내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과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12-13 시즌 리그 전반기에는 득점력이 괜찮아서 자주 선발출전하여 19경기 10골 4도움을 기록하였다.
레딩 , 웨스트햄 , 풀럼전에서 각각 멀티골을 넣었으며 유로파리그 4라운드에서는 헤트트릭을 하였다.
이전 시즌 부동의 주전이었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벤치로 밀어냈을 정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고, 양질의 크로스나 패스 혹은 자기 돌파마저도 골 대신 아까운 찬스로 끝내버린다.
리그 후반기에들어서는 고작 1골만 넣을정도로 부진을 하여 다시 아데바요르가 선발출전을 하였다.
2013-14 시즌엔 새로 영입된 솔다도에 밀려서 리그에선 1골에 그쳤으며 주로 유로파리그와 리그컵에서만 출전했다.
13-14 시즌 리그 14경기 1골 , 유로파리그 5경기 7골 , 리그 컵 3경기 2골 3도움.
총 토트넘에서 결과적으로 143골을 기록하며 토트넘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 순위에서 무려 7위[3]를 기록하며 토트넘에서의 여정을 마무리 하였다.
1.3. 토론토 FC
2014년 2월 말까지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메이저 리그 개막 전인 3월 초 토론토에 입단하게 되면서 과거 토트넘 시절 동료였던 라이언 넬슨 감독과 재회했다.토론토와의 계약기간은 4년간이다.#. 고별전 때 많은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토론토에서 19경기에 나와 11골을 넣었다.
1.4. 선덜랜드 AFC
2015년 1월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1월 14일 선더랜드의 조지 알티도어와 현금 스왑딜로 선더랜드 AFC 이적이 확정되었다.15-16 시즌은 리그에서 32경기 15골을 넣으며 암울한 선더랜드의 몇 안 되는 버팀목으로 활약했다.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했고, 특히 사실상 잔류를 확정한 36R 첼시전의 결승골을 기록하며 최고의 공헌도를 선보였다. 데포의 활약에 힘입어 팀도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올라오며 강등권에서 벗어나 잔류에 성공했다. 당연히 팀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2019년까지 재계약을 했다. 폼을 볼 때 유로 2016 출전도 노릴만 했으나 호지슨이 배제했는데, 몸상태가 완전하지 못한 스터리지와 경험이 부족한 마커스 래시포드가 뽑히는 마당에도 발탁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잉글랜드 감독이었던 로이 호지슨은 유로 2016에서 헤딩이 주 장점으로 뽑히는 케인을 코너킥 키커로 쓰는등 이상한 행보를 보였고, 그 결과로 잉글랜드는 16강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으며 조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호지슨 잉글랜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1.4.1.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세르히오 아궤로가 전반 3분 만에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린 뒤 후반 25분 데포가 동점골을 넣었다.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선 전반 38분 래들리의 패스미스를 틈타 데포가 선제골을 기록했고 이어 60분 추가골이 터졌다. 골 장면에서 데포의 위치는 오프사이드였지만 득점은 그대로 인정됐고, 선덜랜드는 2-0 리드를 가져가면서 첫 승에 대한 기대를 했지만 이청용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벤테케가 헤딩으로 골망을 가르면서 역전패를 당하였다.
10라운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지만 팀의 4-1 패배로 빛이 바랬다.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본머스와 경기서 2-1로 이겼다. 선덜랜드는 시즌 첫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을 따내는 데 기여한다! 동점 상황에서 후반 28분 데포가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역전승을 거뒀다.
EPL 통산 150골을 달성하다 |
14라운드 레스터 시티 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후반 32분 추가골을 기록하며 승기를 잡았다.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전반 20분 저메인 데포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회심의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그러나 크로스바를 넘기며 아웃됐다. 선덜랜드는 후반 4분 이날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 데포가 스루 패스를 그대로 살려 터치한 뒤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이어갔다. 그러나 골문을 살짝 비껴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팀은 3-0으로 진다.
리그 24R 현재 선더랜드의 올시즌 득점수는 24골인데, 데포는 그 중에서 14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려 선더랜드의 득점의 58.3%이다.
결국 2016/17 시즌 최종 성적은 35경기 15골로 선덜랜드를 멱살잡고 하드캐리했다.
1.5. AFC 본머스
데포의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선덜랜드는 10년 만에 강등이 확정됐다. 데포의 계약서에는 선덜랜드의 강등시 자유계약 신분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조항이 붙어 있어서 데포의 두 전 소속팀들인 웨스트햄과 본머스가 데포를 노리고 있었다. 데포의 선택은 본머스였고 2017년 6월 29일 3년 계약에 합의했다. 만 35세에 빅 리그 팀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 꾸준한 성적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나이는 못속이는지 2017/18시즌 리그에서 4골만 기록하며 실망스러운 모습. 하지만 출전 기회가 적긴했다결국 2018/19시즌 리그에서 4경기만 출전한 채, 1월 이적시장에서 스티븐 제라드 감독이 이끄는 레인저스 FC로 임대되었다.
1.6. 레인저스 FC
1.6.1. 2018-19 시즌
레인저스 이적 후 2018/19 시즌 12경기 6골 5도움이라는 기록으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6.2. 2019-20 시즌
2019/20 시즌 20경기 13골이라는 뛰어난 기록으로 리그 득점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월부터는 무릎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시즌 종료 후 완전이적이 결정되었다.1.6.3. 2020-21 시즌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나쁘지 않은 득점 감각을 과시하며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고 토트넘 시절엔 경험하지 못했던 첫 리그 우승이자 팀의 무패우승에 기여했다.1.6.4. 2021-22 시즌
2022년 1월 13일, 레인저스와 계약을 해지한다. 아마 은퇴를 결정한듯하다. 레인저스에서는 총 76경기 32골 8도움. 그러나 1월 20일, 찰튼 애슬레틱 FC, 입스위치 타운 FC,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 선덜랜드 AFC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2022년 3월 22일 영국 매체 '더 선'은 "데포는 올여름 은퇴한다"고 밝혔다. #
1.7. 선덜랜드 AFC 2기
2022년 2월 1일, 좋은 활약을 보였던 선덜랜드에 복귀했다. #2022년 3월까지 7경기에 출장했지만 스스로 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3월 24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 이후 그를 비판하는 기사가 선덜랜드 현지 언론을 통해 쏟아졌다. 계약 기간이 시즌 종료까지인데 선덜랜드 입장에선 승격의 기로에 서서 경쟁해야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4월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움직임이 이전과 같지 않아 노화의 영향을 느껴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선수단의 젊은 선수들이 뛸 기회를 뺏는다고 느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알렉스 닐 감독은 데포의 결심을 존중하며 선수가 떠나야 한다고 느낄때가 있는데 그때가 지금이라고 느낀거 같다고 데포의 은퇴에 존중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선덜랜드의 팬들은 데포의 행보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이며 더러는 그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1] 미도는 이 시즌에 미들즈브러로 이적했다.[2] 토트넘이 칼링컵을 우승할 때 포츠머스 소속이었지만 우승메달을 인정받았다. 반대로 포츠머스에서의 FA컵 우승메달은 토트넘에서의 출장 기록 때문에 출전하지 못해 인정받지 못했다.[3] 기록 당시 5위. 이후 후배 선수들인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데포의 기록을 넘어서며 현재는 7위이다.[4] 데포와 함께 150골을 쏘아 올린 선수는 마이클 오언이다.[5] 이 기록을 넘어선 사람은 260골을 기록한 앨런 시어러, 194골의 현재진행형 웨인 루니, 187골의 앤디 콜, 177골의 프랭크 램파드, 175골의 티에리 앙리, 163골의 로비 파울러, 150골의 마이클 오웬밖에 없다. 150골 고지에 오른후 8골을 추가해 158골로 은퇴한 오웬을 제치고 단독 7위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