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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22:40:34

적보대

1. 일본의 실제 집단2. 일본의 테러 단체(또는 개인)3.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서의 적보대

1. 일본의 실제 집단

赤報隊-세키호다이. 에도시대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넘어가는 교체기에 존재했던 부대. 창설자 및 지휘자는 사가라 소조. 이마에 붉은 띠를 둘렀다 해서 적보대로 불렸다.

도바 후시미 전투 이후 결성된 의용부대로 농민, 재야인사들로 구성되어, 당시의 중심지인 에도(도쿄)로 쳐들어가는 관군(유신군)에 앞서 길목의 마을을 정찰하고 협력을 받아내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당시 계속되는 내전, 기근, 질병으로 민심이 불안한 가운데 사가라 소조(相楽 総三)[1]가 이끌던 적보대 1번대는 유신정부가 포고한 조세반감령을 전하며 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항복으로 에도결전이 무의미하게 된 데다가, 재정이 부족했던 유신정부는 조세반감령 약속을 번복하고 적보대를 유언비어를 퍼뜨린 가짜관군으로 몰아 처벌했다.[2] 훗날에 와서야 사가라 소조의 손자 기무라 가메타로의 노력으로 가짜관군의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사가라 소조는 쇼와 3년(1928년), 정5위의 관위가 주어졌고 다음 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2. 일본의 테러 단체(또는 개인)

자세한 건 적보대 사건 참고.

3.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서의 적보대

진정한 사민평등을 목표로 하는 사가라 소조의 지휘 아래 유신지사 측의 선봉에서 싸워온 부대. 유신정부의 조세감면 정책을 선전하며 유신지사들의 힘을 키워주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어린 시절의 사가라 사노스케도 감복해 집을 뛰쳐나오면서까지 적보대에 참여했을 정도.

그러나 그들이 북상하던 도중 에도결전이 무의미해지게 되면서, 본디 아직 역량이 모자랐던 유신정권으로서는 당초 내세웠던 조세감면을 이룰 여건이 아니었고, 그래서 적보대를 가짜 관군으로 몰아세워 조세감면 그 자체를 없었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원래부터 적보대는 평민 출신이 많아 토사구팽해도 아까울 게 없었다고 판단한 것.

이로 인해 적보대 전원이 시모스와(코슈 가도나카센도에도 이 지명이 나온다.)에서 몰살당했고, 사가라 소조는 참수당해 목이 내걸렸다. 생존자는 준병이었던 사노스케와 가츠히로 둘 뿐이다. 이로 인해 둘은 메이지 유신에 대해 깊은 환멸감과 증오를 갖게 된다.

[1] 본명은 코지마 시로 사에몬 마사미츠. 아버지 코지마 효마는 시모사국 소마군의 부농으로 매관매직을 통해 하급무사의 신분을 얻은 자였다.[2] 다만 적보대장 사가라 소조에게는 적보대 창설 이전에 일어난 에도 사쓰마 번저 방화사건의 범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