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he Masque Of The Red Death에드거 앨런 포가 1842년에 쓴 단편소설. 적사병의 가면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목의 Masque는 가면인 Mask를 잘못 쓴 것이 아니라, 가면극을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사실 본작의 제목도 정확히 번역하면 '붉은 죽음의 가면극' 혹은 '붉은 죽음의 가면무도회'에 더 가까운 셈. 다만 소설 본문에 masque라는 단어는 단 한 군데도 안 나오기는 한다. 대신 masquerade(가장무도회)만 나온다.
2. 줄거리
어느 나라에 적사병이라는 질병이[1] 맹위를 떨친다. 적사병에 걸린 사람은 어지러움과 함께 아프기 시작하여 반 시간만에 코피를 쏟으며 죽는데, 이때 몸에 붉은 반점이 나타난다고 하여 적사병이라 불리게 된다.[2]이에 그 나라를 다스리던 프로스페로 대공은 자신과 동등한 귀족, 귀부인같은 친우들과 함께 적사병이 닿지 않는 큼직한 사원에 들어가서 병을 피하기로 한다.[3] 사원은 거대하기도 하지만 성과 같아 안에는 몇 년이고 먹을 식량과 술, 광대나 미녀들과 온갖 오락거리가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사원에 숨어든 지 6달째. 지루해진 프로스페로 대공은 사원의 일곱 방에서 무도회를 연다. 그러나 무도회의 흥취는 시체처럼 기괴한 가면을 쓴 남자에 의해 깨지고 만다.
홀연히 나타난 남자는 무도회가 열리던 일곱 방들을 마음대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프로스페로 대공은 남자에게 칼을 빼들고 정체를 묻지만, 그에게서 아무 대답도 기대할 수 없었다. 남자의 피로 물들인 듯 한 붉은 옷과 진짜 시체와 구분하기 힘든 가면은 적사병을 연상시켰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 "적사병 그 자체가 아니냐"는 수근거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공포에 질렸던 대공은 그 남자로 인해 무도회를 망친 것에 분노해 단검을 들고 달려들게 되나, 그 사내에게 다가가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사람들이 다가가서 보니 대공은 적사병으로 죽은 다음이었고, 그 사내를 붙들자 그 섬뜩한 옷과 가면 아래엔 아무런 형체도 없이 빈 옷만 남아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도둑처럼 사원에 찾아들어온 적사병이었던 것. 결국 그 어디보다도 병에서 안전하리라 여겼던 무도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적사병에 죽음을 맞이했고, 세상 모든 곳에 적사병과 죽음만이 가득했다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곳에서 번역을 볼 수 있다.
3. 대중매체에서
로저 코먼이 감독, 제작하고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연을 맡아 1964년에 영화로도 나온 바 있다. 한국에선 1991년에 대우비디오에서 죽음의 붉은 마스크란 제목으로 VHS가 정식발매된 바 있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가장무도회 장면에서, 붉은 망토에 해골 가면을 쓴 사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데 그의 옷에 금실로 "나를 만지지 마라, 나는 바깥 세상을 떠도는 붉은 죽음이다"라는 말이 수놓여 있었다는 묘사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이 이 작품보다 60여년 후에 나온 1910년 작이고,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이 보들레르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프랑스에서 먼저 주목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붉은 죽음의 가면'의 오마주일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판에서는 유령이 상당히 호화스러운 복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티장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또한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이 실은 얼굴 그 자체라는 점은 이후 크툴루 신화의 하스터에 오마주되었다. 또한 디스크월드 시리즈 2편에서 죽음이 파티에 참석하던 중 그의 예언능력을 빌리려는 마법사들에게 잠시 소환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 또한 붉은 죽음의 가면의 패러디로 보인다. "파티가 재밌긴 한데, 12시가 되면 아무래도 작살날 것 같다. 그때가 참가자들이 내가 해골가면을 벗을 거라고 생각하는 때거든"이라는 죽음의 말로 확인사살.
크림슨 글로리의 2집 앨범 4번째 곡의 제목으로 쓰였다. 가사 내용을 보면 역시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는 이를 오마주한 이벤트가 존재한다. 전염병이 돌 때 성문을 폐쇄하고 외부와 격리할 경우 일정 확률로 발생한다.
다크 나이트: 메탈에 나오는 다크 멀티버스의 배트맨 중에 하나인 '붉은 죽음'의 이름은 이 소설에서 따왔다.
샤이닝(소설) 서두에도 이 소설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페르소나 5의 주요 보컬곡 중 하나인 Beneath the Mask에는 “포의 가면극”이라는 키워드로 이 소설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게임의 주제와 컨셉 또한 붉은 죽음의 가면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1] Red Plague 는 천연두 또는 단독을 가리키는 별명이다. 하지만 Red Death라는 원어를 생각하면 Black Death라 불리는 흑사병이 모티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실제로 나타나는 증상이나 성 자체를 격리하는 등의 흑사병에서 차용한 듯한 설정이 다수 있다. 또한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은 걸린 적이 없었으나 그의 주변인 대부분을 빼앗아가며 그를 평생 괴롭혔던 결핵에서도 일부를 따왔다.[2] 이 설정은 그대로 베껴간 게 프랑스 작가 마르셀 슈보브(Marcel Schwob,1867~1905)가 쓴 <081호 열차>이다. 여기선 푸른 콜레라라는 새로운 변이성 전염병이 나오는데, 푸른 반점이 온 몸에 가득 생기며 고열 속에 피를 토하고 걸리면 30분 안에 죽는다. 이 소설 줄거리는 푸른 콜레라가 아시아를 덮쳐 무수한 사람이 죽어가고 유럽도 병이 퍼져가는데, 화자는 프랑스 파리, 리옹, 마르세유를 경유하는 ‘180호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이다. 화자의 형은 배에서 일하는 운송선의 기관부이다. 마르세유에 푸른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화자는 죽을 각오로 기차를 운행한다. 자신이 운행하는 기차에 탄 손님 중에 푸른 콜레라 보균자가 있을 것이고, 마르세유에서 출발한 기차가 파리에 도착하면 콜레라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화자는 파리로 향하는 기차를 운행하는데, 맞은편 철로에 ‘081호 기차’가 180호 기차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목격한다. 화자와 조수 화부는 경악하는데, 저런 번호를 가진 열차가 없기 때문이다. 영문 모르던 화자는 또 놀라는데, 081호 기차에 타고 있는 기관사가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081호 기차 객실 안에 있는 형의 시체를 보게 된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충격에 빠진 화자는 180호 기차 객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푸른 콜레라에 걸려 죽어 있는 형을 발견한다. 승객들은 절망 속에 비명지르고 달아났고, 결국 "파리에도 푸른 콜레라가 창궐하여 세상이 몰락해간다"는 화자의 중얼거림으로 끝난다. 참고로 이 소설 작가 슈보브도, 포와 비슷한 나이인 30대 후반에 병으로 요절했다.[3] 데카메론의 설정을 참고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