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현 운남성 일대에 있었던 고대 국가. 알려진 점이 그리 많지 않은 나라이나 현재의 운남성 일대가 중원 국가의 손에 들어가는 계기를 만든 나라다.2. 역사
사기에 따르면 건국자는 초나라 장군인 장교(莊蹻)로 그는 초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당시 초나라는 경양왕 치세였는데 기원전 279년 경양왕은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는 검중군 일대를 통해 진나라를 공격하려 했고 이 때 이 임무를 맡게 된게 장교였다고 한다.장교는 명령대로 검중군을 점령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파촉을 거쳐 전나라가 세워지는 전지라는 땅까지 도달했다. 그 뒤 초나라에 이를 보고하려고 했으나 기원전 297년 장교 없는 검중군을 진나라가 다시 수복해버려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장교는 그냥 이 땅에 눌러앉아 왕이 되어 전나라를 세웠고 장교는 현지 풍습을 존중하였다고 한다. 이후 장교는 기원전 256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후에 진시황제가 다스릴때에 진나라가 전나라를 격파했다고 하며 이 때 잠시 전나라를 통치했다는 견해가 있으니 진시황제 사후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전나라도 진나라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이 보인다. 이후 기원전 122년에 한무제가 흉노를 피해 서남쪽으로 서역과 통하는 길을 찾으려 했을 때 다시 언급되며 이후 기원전 111년에 남월이 멸망하자 한무제가 전나라 왕에게 입조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기원전 109년 전나라를 정복하고 익주군을 설치하였다.
다만 남월과는 달리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아서 한무제는 전나라 왕에게 인장을 하사하고 계속 그 땅을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1] 그러다가 기원전 86년 이 지역의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군이 진압했고 3년 뒤 익주태수가 반란에 휘말려 죽자 다시 진압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4000명의 병사를 잃었다. 기원전 82년, 다시 한군이 진압에 나서니 5만명을 참수하고 가축 10만 마리를 노획하였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나라는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한다. 이후 후한 시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이 지역이 한나라에 동화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115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고 한다.
[1] 명목상 이 지역을 점령했어도 통치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게 한참 후인 삼국시대때도 제갈량이 이 지역을 평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