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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9 15:45:14

정재선(1898)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정재선
鄭在先[1]先으로 등재되어 있다.]
파일:정재선2.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8년 4월 29일
경상북도 청하군 현내면 미남리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2]
사망 1971년 4월 26일 (향년 72세)
경상북도 포항시
본관 초계 정씨[3]
가족 배우자 김소향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부부위패 7판-156호
상훈 2004년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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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4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98년 4월 29일 경상북도 청하군 현내면 미남리(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에서 아버지 정규현(鄭圭鉉, 1865 ~ 1936)과 어머니 달성 서씨[4] 사이에서 5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경, 영일군 송라면 대전리 교회의 윤영복(尹永福)은 신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는 사실을 알고 청하면 덕성리 교회의 오용간과 만나 논의한 끝에 3월 22일 덕성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3월 22일 오후 1시경, 윤영복과 오용간 등은 장터로 나아가 시위군중을 주도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때 정재선은 시위대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행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5] 복역하였다.

1971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 200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29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정재선과 배우자 김소향(金小香)을 기리는 부부위패가 봉안되었다.

[1] 초계정씨임진대보 권12 188쪽에는[2] 초계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기복·정백용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박사공파(博士公派)-진정공파(眞定公派)-청하파(淸河派) 28세 선(先) 항렬.[4] 서학봉(徐學鳳)의 딸이다.[5]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