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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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 조 키니어 Joe Kinnear | |
본명 | 조셉 패트릭 키니어 Joseph Patrick Kinnear | |
출생 | 1946년 12월 27일 | |
아일랜드 더블린 | ||
사망 | 2024년 4월 7일 (향년 77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밀 힐 | ||
국적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 토트넘 홋스퍼 FC (1965~1975)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1975~1976) |
감독 | 알 샤바브 두바이 (1983 / 수석 코치) 인도 대표팀 (1984) 네팔 대표팀 (1987) 동커스터 로버스 FC (1989 / 임시 감독) 윔블던 FC (1992~1999) 루턴 타운 FC (2001~2003) 노팅엄 포레스트 FC (2004)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8~200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3~2014 / 풋볼 디렉터) | |
국가대표 | 26경기 (아일랜드 / 1967~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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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전 축구선수 출신 감독.2. 선수 경력
토트넘에서 10시즌을 보내며 다양한 우승컵을 들었고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에서 1시즌을 보낸 다음 은퇴했다.3. 감독 경력
그는 아시아 지역에서 감독을 시작했으며 유럽으로 건너와 활약했다.현역 은퇴 이후 UAE에서 샤르자와 알 샤밥에서 지도자 경력을 맡았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인도, 네팔을 거쳐 1987년 동커스터 로버스에서 데이브 맥케이 감독을 보좌하며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1989년에는 맥케이의 사임에 따라 잠시 감독대행을 맡았다. 이후 윔블던 FC의 리저브 팀 감독을 맡다가 1992년 1월 피터 위드 감독의 경질로 윔블던의 감독을 맡았다.
키니어는 윔블던을 안정적으로 잘 이끌었고 1993-94 시즌에는 6위라는 호성적을 내며 이 달의 감독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1994-95 시즌에는 9위로 마감했다. 1996-97 시즌에는 리그에서는 8위로 마감했고 컵 대회에서는 리그컵과 FA컵 모두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1998-99 시즌을 마치기 전인 1999년 3월 심장 이슈로 인해 감독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1999년 6월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윔블던은 키니어가 떠난 1999-00 시즌 18위로 강등되었다.
2000-01 시즌 옥스포드 유나이티드에서 잠시 풋볼 디렉터를 맡았으나 2001년 1월 건강 문제로 사임했다. 얼마 뒤 4부리그 강등 위기의 루턴 타운의 감독을 맡았지만 강등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2001-02 시즌 4부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3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2002-03 시즌에는 3부리그에서 9위로 마친 가운데 2003년 5월 클럽은 컨소시엄에게 매각되었고 키니어는 경질당했다.
2004년 2월 3부 리그 강등 위기의 2부리그 팀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직을 맡아 14위로 잔류시켰다. 그러나 2004-05 시즌 23경기에서 단 4승에 그치면서 3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리자 2004년 12월 16일 경질되었다. 노팅엄은 해당 시즌 22위로 마치며 유러피언컵 우승팀 중 최초로 3부 리그 강등의 수모를 겪었다.
이후 야인 생활이 계속되다가 2008년 9월 26일 케빈 키건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프리미어리그 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한 달 짜리 임시감독직을 맡았다. 계약기간이 12월로 연장되었다가 급기야 11월 28일에는 정식 감독이 되어 2008-09 시즌 끝까지 계약이 연장되었다. 사실 키니어가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마이크 애슐리 구단주의 상황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 문제 때문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7일 WBA와의 원정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 병원에 실려갔고 이 경기는 크리스 휴튼이 대행을 맡았다. 심장 수술 문제로 감독직을 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뉴캐슬은 점점 추락하다가 앨런 시어러를 임시감독직에 앉히고도 끝내 16년 만에 2부리그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