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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6 23:53:56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조르제 부야디노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베르나르드 히글
(1938)
<colbgcolor=#ffffff,#191919>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1939)
구스타프 레너
(1939)
구스타프 레너
(1939)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1939)
스타니슬라프 발랴레비치
(1940)
스타니슬라프 발랴레비치
(1940)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1940)
스타니슬라프 발랴레비치
(1940)
스타니슬라프 발랴레비치
(1940)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1940)
에르네스트 두바치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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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ujadinovic-djordje.jpg
이름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Ђорђе Вујадиновић / Đorđe Vujadinović)
생년월일 1909년 11월 29일
사망년월일 1990년 10월 5일
국적 유고슬라비아[1]
출신지 스메데레보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173cm/ 64kg
등번호 -[2]
소속팀 BSK 베오그라드 (1928-1940)
감독 OFK 베오그라드 (1960-1961)
알타이 SK (1967)
국가대표 44경기 18골 (1929-1940)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
3. 뒷이야기4. 수상
4.1. 클럽4.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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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고슬라비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1967년에 알타이 SK 감독을 맡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조르제 부야디노비치는 스메데레보 인근의 콜라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이 자식이 없었던 터라 부야디노비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베오그라드에 있는 삼촌의 집에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삼촌의 집에서 고무공을 갖고 놀기를 즐겼고 삼촌은 그런 그의 축구 사랑에 큰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주로 축구를 하던 들판이 물에 잠기게 되면 부야디노비치는 칼레메그단으로 옮겨서 축구를 했는데 그 곳은 모래가 많은 땅이었던 터라 거기서 축구를 하면 팔꿈치나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부야디노비치는 삼촌 덕에 BSK 베오그라드에서 축구 선수로 뛰게 되었다.

2.2. 선수 생활

부야디노비치가 입단할 무렵 BSK에는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와 같은 좋은 유소년 선수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부야디노비치 역시 기량이 날로 일취월장하였다. 20년대 말엽에는 유고슬라비아 사람들 역시 축구에 큰 관심을 보여서 축구 관중들도 늘어갔다.

득점왕을 2차례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던 부야디노비치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선수들이 서서히 돈을 받으면서 축구를 하였는데 부야디노비치는 국립 은행에서 일을 했다.

또한 부야디노비치는 신사적인 매너로 유명했었는데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딱 한 번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 경기가 바로 초대 월드컵 4강 우루과이전이었는데 부야디노비치는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고 두 번째 골까지 넣었지만 심판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골을 취소시켜버렸다. 그 때문인지 진이 빠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1대6으로 대패하며 월드컵을 마감해야만 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부야디노비치는 주로 유스팀에서 감독을 맡았는데 친정팀 BSK에서도 감독을 맡았지만 오래 맡지는 못했다.

3. 뒷이야기

4. 수상[5]

4.1. 클럽

4.2. 개인



[1] 현재 국적으로 따지면 세르비아이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Leteći fudbaler. 영어로는 The flying footballer[4] 부야디노비치의 A매치 참여횟수가 조금 적은 것도 그 때문이다.[5] 부야디노비치는 BSK 베오그라드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