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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21:03:11

조용겸

趙容謙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고려의 인물.

2. 생애

전주절도사로 1010년에 거란고려를 침공해 제2차 여요전쟁이 일어났고 1011년에 거란이 개경을 공격하기 위해 남하하자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 삼례역에 이르자 조용겸이 평상복 차림으로 맞이했다.

전주가 옛 후백제의 수도라 태조께서 싫어하셨다며 행차하지 말라고 박섬이 진언하자 현종이 그 말을 듣고 장곡역에서 묵자 조용겸은 현종을 머물게 해 그에게 기대어 위세를 부려보려고 꾀했으며(협천자), 이재, 최즙, 유승건과 함께 흰 표지를 관에 꽂고서 북을 치며 떠들썩하게 나왔지만 지채문이 역졸을 시켜 문을 닫고 견고히 지키게 하자 들어가지 못했다.

지채문이 유승건을 통해 조용겸이 한 일임을 알았고, 이재와 함께 부름을 받고 대명궁주의 말을 끌고 갔다가 전주로 돌아갔다. 2차 여요전쟁이 마무리된 후 8월 2일에 형부에서 왕이 남행할 때 경거망동했다고 해서 이름을 삭제하고 유배보내라고 상주하자 유승건, 이재, 최즙, 최성의, 임탁과 함께 유배를 갔다.

3. 대중매체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현종의 남행 도중에 현종을 대접해 출세하려는 마음을 가져 현종에게 호사스러운 식사 대접을 했지만 현종이 식사를 했으면서도 음식이 너무 과하고 허례가 심해 마음 속으로 불편히 여겼으며, 양협의 말대로 신료들의 밥은 공주보다도 풍족하나 군사들의 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현종이 그들에게도 남는 음식을 하사하자 인상을 찌푸렸다가 현종에게 나주에 가지 말고 전주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현종이 나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주에 들르겠다고 하자 전주의 백성들에게 행차해 성덕을 베풀어달라고 요청했고, 채충순, 박충숙, 박섬 등이 반대하고 박섬이 김은부의 말에 따르면 공주의 민심이 좋지 않다며 전주도 같을 거라며 만류하자 조용겸은 전주의 민심을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서 박섬과 말다툼을 해서 현종이 돌아오는 길에 묵을 것이라고 했다.

현종이 장곡역에 머무를 때 자신의 계획대로 전주에 머물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 및 협박을 통해 어가를 가로채기로 하며 사람들을 시켜 북을 치게 하다가 마한조와 유승건이 지채문을 보고 물러가거나 조용겸이 시켰다고 실토하게 된다.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채충순의 의견을 들은 현종은 조용겸이 반란을 일으키려던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부르자 불안감에 휩싸인 채 이재와 함께 현종에게 갔으며, 현종은 그들에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해달라고 부탁하여 둘 다 금구현까지 대명왕후의 말고삐를 잡다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