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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2:54:41

주앙 핀투(1961)

주앙 핀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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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61px-UEFA_Euro_1984.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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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축구감독
파일:joao-pinto-mais-perto-da-equipa-do-fc-porto.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주앙 핀투
João Pinto
본명 주앙 도밍구스 다실바[1] 핀투
João Domingos da Silva Pinto
출생 1961년 11월 21일 ([age(1961-11-21)]세)
포르투갈 올리베이라두도우루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 체중 72kg
직업 축구 선수 (라이트백 / 은퇴)
축구 감독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CF 올리베이라 두 도우루 (1974~1976 / 유스)
FC 포르투 (1976~1981 / 유스)
FC 포르투 (1981~1997)
감독 FC 포르투 (1997~2004 / 유스)
FC 포르투 (2006~2010 / 수석코치)
SC 코빌량 (2010~2011)
GD 샤베스 (2013)
기타 FC 포르투 (2004~2006 / 스카우터)
국가대표 70경기 1골 (포르투갈 / 1983~1996)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프로 데뷔 전2.1.2. FC 포르투
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4. 주앙 핀투에 대한 말, 말, 말5. 여담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축구선수 출신 감독.

FC 포르투의 전성기 시절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며 포르투에서 통산 587경기를 출전해 구단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국가대표에서는 유로 1984에서 포르투갈을 4강으로 올려놓으며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프로 데뷔 전

1974년 12살에 자신의 출생지인 올리베이라두도우루[2]에 있는 CF 올리베이라 두 도우루 유스 팀에 입단했다. 그리고 후에 핀투가 상당히 유명해지자 구단 공식 홈 페이지에서 핀투 설명문이 있을 정도다.

1976년 14살에 FC 포르투의 유스 팀에 입단했다.

2.1.2. FC 포르투

1981년에 FC 포르투 1군 팀으로 콜업 되었다.

1981-82 시즌에 7경기를 출전하며 아직은 유망주니 출전 기회가 적은 것으로 보였으나 1982-83 시즌에 23경기를 출전해 주전으로 도약했다.

1984-85 시즌에 처음으로 30경기 출전을 했다. 그리고 그 시즌에 포르투가 몇년만에 우승하며 커리어 처음으로 우승했다.

1986-87 시즌에는 29경기 3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또다시 SL 벤피카에 밀려 준우승을 했다. 그러나 유러피언 컵 1986-87 시즌에는 9경기를 출전했고 결승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1로 승리하며 주장으로 FC 포르투 사상 최초 유러피언 우승 컵을 들어올렸다.[3] 그리고 라커룸에 들어갈때까지 우승컵을 놓치지 않았다.

이후 여전히 매년마다 주전으로 활약해 포르투에서 우승 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1996-97 시즌이 끝나고 나서 조르즈 코스타에게 자신의 상징적인 등번호 2번을 물려주는 상징적인 행사로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4]

FC 포르투에서 16개의 트로피를 얻었고 통산 587경기 20골을 기록하며 현재까지 구단 최다 출전 선수다.

2.2. 국가대표 경력

1983년 2월 16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20분에 교체 투입되었다. 팀은 3:0으로 졌다.

1983년 2월 23일 서독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을 하며 팀의 1:0 신승에 기여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예선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전에서 디노 바조의 결승골로 포르투갈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나며 그의 별명인 주장(Capitão)이 더 돋보였었다.

프랑스 월드컵 예선 4라운드 1996년 11월 9일 우크라이나전에서 주장으로 출전해 1:0으로 이기는데 기여했고 이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은퇴 당시 70경기로 국대 최다 출전자였고 현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장으로 출전한 기록은 44회며 페르난두 쿠투와 함께 공동 2위다.

2.2.1. UEFA 유로 1984

이후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뛰었고 UEFA 유로 1984 명단에도 들며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등번호는 9번을 배정받았다.[5]

1라운드 서독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0:0으로 무승부를 했다.

2라운드 스페인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1:1로 무승부를 했다.

3라운드 루마니아전에서 네네의 선취골을 지켜내며 1:0으로 승리해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4강 프랑스전에서 연장 끝에 미셸 플라티니에게 연장 후반 역전골을 먹히며 2: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대회 종료 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2.2.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명단에도 들었고 이번에는 제대로 2번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3경기 모두 벤치에만 있었고 결국 팀은 꼴지로 탈락하며 월드컵 무대에는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3. 감독 경력

은퇴 직후 클럽에 대한 헌신에 감사의 이미로 FC 포르투의 유스 감독으로 합류했다. 그동안 히카르두 카르발류, 브루누 알베스 등의 선수들을 키워냈다.

2003-04 시즌 종료 후 FC 포르투의 스카우터로 보직을 변경했다.

첫 시즌에는 지에구, 페페, 루이스 파비아누, 안데르송 등의 선수들을 영입했으나 벤피카에 밀려 우승에 실패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특별한 영입은 없었으나 첫 시즌에 영입했던 선수들의 활약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샤베스 이후 트랜스퍼마크트에서는 포르투의 행정 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나 포르투 공홈에서는 안떠서 확실한 정보가 없다.

3.1. SC 코빌량

2010년 6월 16일에 SC 코빌량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1경기 동안 21승점만 얻는 부진한 성적으로 경질당했다.

3.2. GD 샤베스

2013년 1월 8일에 GD 샤베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5위였던 팀을 우승에 성공시켰다.

4. 주앙 핀투에 대한 말, 말, 말

그는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선수를 찾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바비 롭슨

5. 여담



[1] 로망스어게르만어권의 인명이나 지명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포르투갈어 위키백과에 보면 빌라르드안도리뉴에서 태어났고 이웃 마을인 올리베이라두도우루로 이동해 축구를 했다고 나온다.[3] 이후 포르투는 17년 뒤 주제 무리뉴가 유명해진 계기로 알려진 UEFA 챔피언스 리그 2003-04 시즌에 다시 우승하게 된다.[4] 조르즈 코스타는 이후 주장으로서 다시 한번 포르투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5] 위키백과에서는 9번을 배정받았고 2번은 공격수 네네가 썼다고 나와있고 프랑스전 영상을 보면 9번을 쓴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유로 홈페이지를 보면 2번을 배정받은게 나와있고 네네는 13번을 썼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