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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18:47:52

지미 스와가트


지미 스와가트
Jimmy Swaggart
파일:Jimmy-use1.png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지미 리 스와가트
Jimmy Lee Swaggart
출생 1935년 3월 15일 ([age(1935-03-15)]세)
미국 루이지애나주 페리데이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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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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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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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목사 (오순절교회[제명됨])
종교 개신교
링크 #

1. 개요2. 생애3. 몰락4. 여담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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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오순절교회 전도사이자 가스펠 아티스트이자 피아니스트. 1971년 부터 시작된 그의 텔레비전 설교는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에는 미국 어디에서나 그의 방송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거물급 목사였다. 그를 따르는 성도만 수 백만이었으며 그의 설교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또한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 1700만 장의 앨범을 팔았으며, 한 때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 거론될 수준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성추문으로 인해 지미 스와가트의 명성은 완전히 몰락했고 현재는 독립적인 교단을 만들어 여전히 목회를 하고 있다.

2. 생애

1935년 3월 15일에 오순절 소속 목회자인 빌리 스와가트와 소작농 집안 출신인 민니 헤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태 신앙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독교 사상을 가진 채로 성장했다. 1952년에는 17세의 나이로 15세의 프랜시스 앤더슨과 결혼을 했고,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미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시에 여러 교회에서 가스펠을 불렀다.

지미 스와가트는 집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1955년부터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전환되었다. 1960년대 부터 가스펠 음악 앨범을 출시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도를 하면서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Family Worship Center라는 이름의 개척 교회를 세웠고 오순절교단으로부터 정식 목사 안수도 받았다.

그의 전성기는 1971년 부터이다. 루이지애나주 일대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통해 매주 30분 분량의 설교 방송을 내보냈으며 지역 AM 방송국인 WLUX(현재 WPFC)를 구입해 라디오로 설교를 하면서 지미는 유명해졌다. 1978년에는 1시간으로 분량을 늘리더니 1980년대 초반에는 미국 전국으로 방송 송출이 확대되었다. 당시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주도의 복음주의 열풍이 불었던 때이고 지미는 마침 적절히 노를 잘 저었던 것이다.

전미의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지미를 잘 알았고 또 그를 존경했다. 그의 설교 영상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앞으로도 지미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3. 몰락

파일:jimmyswaggart-620x330.jpg

1986년에 지미 스와가트는 동료 목사인 마빈 고먼(Marvin Gorman)이 저지른 여러 차례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를 고발했다. 마빈 고먼은 목사 직위를 박탈당하고 교단에서도 쫒겨났다. 또한 수 많은 소송으로 마빈은 돈을 잃어야 했다. 분노한 마빈은 자기 아들과 사위와 함께 뉴올리언스 외곽의 메터리에 위치한 Premier Inn사의 모텔을 감시하면서 잠복했다. 곧 지미 스와가트는 매춘부와 모텔에서 접촉을 했고 이 광경이 그대로 마빈에게 촬영되었다.

증거 자료를 입수한 마빈은 자신의 불륜 사실이 거짓이었다고 발표하면 자기도 지미의 간통을 묵인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미는 이를 무시했고 결국 마빈은 보복 차원에서 증거 자료들을 교단에 제출해버렸다. 지미는 논란에 휩싸였고 텔레비전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궁지에 몰린 지미는 1988년 2월 21일 생방송으로 통곡을 하며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께서 저의 영혼을 구원하소서"라며 회개했고 워낙 유명하다보니 미국의 주요 방송사에서도 특집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명예 회복을 노리기 위한 쇼였으며 지미는 전미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교단 역시도 그의 회개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퇴출시켜버렸다. 파급력이 워낙 커서 한국의 조선일보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1991년 10월 11일에는 도로 중앙선 침범으로 경찰의 단속에 걸려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하필이면 조수석의 매춘부까지 발각되었다. 매춘부는 수사 과정에서 지미가 카섹스를 제안했다고 증언하면서 지미의 명성은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사건 이후에도 지미는 반성은 커녕 '주님이 아무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두 차례의 성추문으로 그를 따르던 수 많은 신도들이 떠나버렸고 지금은 독립적인 교단을 만든 채 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전의 명성은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4. 여담

5. 같이 보기


[제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