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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19:13:51

이케다 테루마사

지전휘정에서 넘어옴
파일:Terumasa_Ikeda.jpg
파일:이케다 가몬.svg
이케다 츠네오키
이케다 가문의 비젠 나비 가몬

池田輝政

1565년 1월 31일 ~ 1613년 3월 16일


1. 전국시대 인물

이케다 츠네오키[1]의 차남. 오다 노부나가의 근신으로 많은 무공을 세웠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히데요시를 섬겼다. 아버지와 형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전사하자 가문을 상속했다.[2] 친누이가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정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데츠구 사건 당시 연루되기는커녕 오히려 히데츠구의 정실이 그의 누이라는 이유로 살아난 것을 보면 히데요시의 신뢰도 두터웠던 듯.[3]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가담하여 서전에서는 기후성을 공략하고, 결전에서는 동군 선봉을 맡아 분전하였다.[4] 전후 그 공으로 하리마국 히메지에 영지 53만석을 받아 '히메지 재상'으로 불리었으며, 현재 모습의 히메지 성도 거의 이 사람 작품이다.

아내는 나카가와 키요히데의 딸 이토히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녀 도쿠히메는 계실이고 정실부인은 이토히메다.[5][6] 테루마사 사후 히메지번을 상속받는 장남 도시타카 역시 이토히메의 아들이다. 도쿠히메가 도쿠가와 가의 여성답게 기가 세 일설로는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배다른 자식을 독살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도쿠히메의 자식들이 정실 출신 도시타카에 비해 정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테루마사는 이러한 이유로 장가 잘 든 덕에 출세한 인물로 폄하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도 한 가닥하는 능력자. 애초에 무능한 인물이었으면 이에야스가 딸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테루마사의 장남 토시타카, 토시타카의 장남 미츠마사가 차례로 히메지번을 물려받았지만 미츠마사의 나이가 7세로 너무 어려 히메지번 대신 돗토리번 32만 5천석으로 전봉되었다. 한편, 테루마사의 차남 타다츠구는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사망 이후 오카야마번을 받았지만 1615년 16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테루마사의 3남 타다오가 오카야마번을 물려받았다. 타다오가 1632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타다오의 장남 미츠나카가 오카야마번을 물려받았지만 고작 3세에 불과하여 요충지 오카야마를 지배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당시 장성한 나이였던 사촌 미츠마사와 영지를 맞바꿔 테루마사의 장남 계열인 미츠마사와 그 후손이 오카야마번(31만 5천석 - 종가)을, 3남 계열인 미츠나카와 그 후손이 돗토리번(32만 5천석 - 분가)을 다스리게 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테루마사의 3남 타다오는 도쿠히메의 아들로, 돗토리 이케다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여계 후손이었기 때문에 막부로부터 신판 다이묘에 준하는 여러 특혜를 받기도 했다.

추가로 본래 이케다 테루마사가 받았던 히메지번은 막부의 의향에 의한 것인지 여러 가문<이케다 - 혼다 - 마쓰다이라(오쿠다이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사카키바라(마쓰다이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혼다 - 사카키바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사카이>이 번주(藩主)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카이 가문이 최종적으로 정착을 하게 된다. 다만 사카이 가문이 최종적으로 정착을 하게 된 히메지 번은 고쿠다카(石高)가 크게 줄어, 이케다 테루마사 시절의 52만석에서 37만석이나 줄어든 15만석이 된다.

2. 창작물

2.1. 바사라2

파일:external/www.visco.co.jp/f_6mb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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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어이. 나리를 해칠 이유는 없잖아?

담뱃대가 트레이드마크. 아버지 이케다 츠네오키가 타는 전투기의 강화판을 타고 등장한다.

2.2.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池田輝政.jpg 파일:池田輝政1.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전형적인 B급 무장.

2.3. 지휘봉의 행방

파일:지휘봉의 행방_이케다 테루마사.png

비주얼 신장 180cm, 비주얼 연령 32세, 취미는 좌선.

도요토미 정권에서 중용되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이기 때문에 동군에 들었다. 무표정하고 말이 없으며 명령에 충실하다. 묘하게 '사명'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는 옛날 아버지가 도발에 넘어가 명령을 어기고 함부로 돌출했다가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 자신도 아들(테루마사의 형)과 함께 전사한 경험 때문.

생긴 건 아무리 봐도 로보캅. 여담으로 초기 설정화에서는 투구를 벗은 얼굴이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똑같다.


[1] 오다 노부나가의 젖형제. 그런이유로 키요스 회의때 결정권자 5인방중 한자리를 차리 할수 있었다. 또한, 이때 히데요시의 편을 들었는데, 히데요시의 보살핌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듯 하다.[2]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녀 도쿠히메와 결혼할 때 아버지를 전사시킨 도쿠가와의 장수 나가이 나오카츠를 만났는데, 그의 봉록이 5000석인 것을 알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고작 이 정도 봉록을 받고 있다니'하고 한탄한 뒤 장인에게 청원해 나가이 나오카츠의 봉록을 1만 석으로 올려준 일화가 남아있다.[3] 상술한 대로 원래 이케다 테루마사의 아버지 이케다 츠네오키는 오다 노부나가와는 의형제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런 사람이 히데요시의 편을 들어줬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4] 원래 이케다 테루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가신이었는데 그 히데츠구가 히데요시에게 잔인하게 처형당했고 본인도 그 여파에 휘말려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이에야스의 비호를 받아 살아났다고 하니 테루마사 입장에서도 이에야스의 편을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5] 다만 이렇게 기록되어있음에도, 오늘날의 해석으로는 테루마사가 이토히메와 사실상 이혼하고 도쿠히메와 재혼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토히메가 출산 후 몸이 안좋다는 이유로 친가에 돌아갔는데, 이 과정이 여러모로 석연찮기 때문.[6] 참고로 도쿠히메 역시 테루마사와는 재혼한 것으로, 도쿠히메의 첫 남편은 호조 우지나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