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09:12:04

진표(신라)

진표율사 생애 영상
1. 개요2. 생애3. 문학 작품에서

1. 개요

眞表
(? ~ ?)

8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이다.

2. 생애

자세한 기록은 부족하나 주로 경덕왕 대에 활동했다. 보통 진표율사(眞表律師)로 불리는데, 여기서 율사(律師)란 불교의 계율을 자세히 공부한 승려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삼국유사 '진표전간'에 의하면 완산주(지금의 전주시) 출신으로 속성은 '정씨(井氏)'라 한다. '진표전간'에선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 12세 때 출가하여 변산의 부사의방장으로 간다. 변산에 진표가 수행한 부사의방장이라고 전해지는 곳이 있는데, 한사람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한 절벽에 붙은 바위덩이다. 여기서 망신참법(팔다리를 돌로 찍어가면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수행한다

수행 끝에 미륵불로부터 점찰경 2권, 증과간자 189개를 받고 득도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금산사를 중창하고 신라 5교 9산 중 법상종(法相宗)의 시조가 되었다..진표와 법상종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으며 보충하자면 오히려 원측의 유식 불교와 관련 있는 종파가 법상종인데, 진표는 유식 불교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원측의 제자인 순경과 태현을 시조로 보기도 한다.

제자로는 영심(永深), 보종(普宗), 신방(信芳), 체진(體珍), 진해(珍海), 진선(眞善), 석충(釋忠) 등이 있는데, 모두 산문(山門)의 조사가 되었다고 한다. 미륵 신앙을 중시한 승려로 종파에 따라서는 진표를 한반도 미륵신앙의 시조로 보기도 한다. 미륵신앙은 삼국시대에 신라 승려가 공주의 신원사에 미륵사상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갔다는 일화 등을 통해 먼저 백제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침 진표가 출생하고 수행한 곳도 백제의 고지에 해당하므로 그 풍토를 이어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 문학 작품에서

고은 시인은 <만인보> 3권에서 그를 다룬 시를 썼다. 제목은 사람 이름과 같은 '진표'.
진표
소위 통일신라 뛰어난 스님
과연 큰스님
화엄 의상보다 큰 스님
백제땅 진내말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살에 금산사 스님이 되어
부안 내소사
영산사 머물며 깨쳐
이윽고 금산사 3층 미륵대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백제 유민의 미륵신앙을
백제 미륵사상을
신라 관제 미륵체제로 바꾸어
백제땅 백성을 몽땅 담자는 수작이었다
거기에 뛰어난 스님
큰스님 진표를 내세웠다
진표 점찰범회란
백성의 깨달음에 술을 붓고
향 사르어
맑은 쇠를 녹여버리는 법회였다
『점찰선악업보경』이란 무엇이더냐
다 거짓된 경전 아니더냐
애석한지고
진표는 금산사뿐 아니라
금강산에도
속리산에도
미륵신앙의 터전 열어
동양 역대의 미륵 봉기를 파묻기 위하여
신라 관제 미륵체제를 눈 지그시 감고 열었다
깊은 탄식 있어야 할진저


[1] 참고로 '내말(乃末)'은 5두품 직책인 '나마'의 이칭으로 해석되는데, 아버지가 '진씨(眞氏)' 성을 가진 나마인 점과 진표의 출신 지역이 옛 백제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가문이 백제의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