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비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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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비 14대 국왕 Chararic | 차라리크 | ||
제호 | 한국어 | 차라리크 |
라틴어 | Chararic | |
생몰 년도 | 미상 ~ 558년/559년 | |
재위 기간 | 미상 ~ 558년/5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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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에비 왕국 14대 국왕.2. 행적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성 마르틴의 기적>에서 차라리크 왕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차라리크가 군림하던 시기 수에비 왕국의 백성들은 나병으로 크게 고통받았다. 급기야 차라리크의 아들마저 나병으로 고통받자, 왕은 아들을 구학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이때 투르의 주교 마르틴이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그는 마르틴에게 사절을 보내 아들을 고쳐준다면 아리우스파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마르틴이 성인의 유물을 보냈고, 유물이 수에비 왕국에 도착하자 왕자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이에 왕과 궁정 모두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마르틴은 수에비 왕국의 영역인 갈리시아로 가서 30년간 포교 활동을 전개하다가 580년경에 사망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 학계는 그레고리우스의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세비야의 이시도르, 비클라로의 요한 등 5~8세기 이베리아 반도 역사의 주요 저자들은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수에비 왕국에서 최초로 개최된 가톨릭 공의회인 제1차 브라가 공의회 문서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차라리크가 실존인물이라면, 다음 왕인 아리아미르 왕이 558/559년에 즉위했으니 그 이전까지 통치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