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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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차필드(Charfield) 역의 모습. 역 자체는 1965년에 폐쇄되었다.
1. 개요
당시 현장 사진
1928년 10월 13일 오전 5시 20분경, 영국 글로스터셔 차필드 마을에서 철도 사고가 발생하였다.
리즈를 떠나 브리스틀로 향하던 급행열차가 신호착오로 인해 차필드 역에서 멈춰 서 있던 열차와 충돌해서 발생한 사고로, 급행열차는 불길에 휩싸였는데 당시에는 객차가 나무로 되어 있어 피해가 컸다. 승객 60명 중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41명이었다.
물론 큰 사고이긴 하지만 이 사고 자체만으로는 미스터리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3등칸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두 아이가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이 영국 철도 사고 역사상 가장 이상한 미스터리로 떠오르게 된 원인이었다.
2.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아이들
꼭 껴안은 채 죽어 있던 시체들은 사건이 있은 지 2개월 후 부검이 이뤄졌다. 부검에 따르면 시체들은 13세 아이와 6세 가량의 아이라고 확인되었다. 하지만 시체가 워낙 심하게 훼손되어서 다른 정보는 물론 성별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총 사망자 16명 중 14명은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에 의해 금방 신원이 확인되었지만 이 두 아이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하러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사고 현장에서는 무슨 격언 같은 글귀가 적혀 있는 교복 상의 주머니 조각과 남자아이용으로 보이는 9인치 길이의 새 신발 2켤레, 그리고 C.S.S.S.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양말 조각이 발견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아이들의 신원을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검표원이었던 해리 하이네스는 "글로스터셔에서 12살쯤 된 남자아이와 6살쯤 된 여자아이가 열차를 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아이들은 둘 다 학교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동행하는 어른은 없이 자기들끼리만 여행을 했다고 한다.
3. 가설들
이 아이들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이 중 대표적인 가설은 다음 3가지가 있다.- 그 아이들은 고아로서 위탁 보호자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었지만 위탁 보호자들이 아이들의 사고를 외면했다는 가설. 위탁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양육비를 충분히 받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유산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았을 텐데, 마침 아이들이 학교로 가는 도중에 사고로 죽는 바람에 양육비를 비롯해 유산까지 손쉽게 차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사고 이후 그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나선 학교가 1군데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검증되지는 못했다.
- 아이들은 부모나 보호자와 여행 중이었지만 그 동반자들 또한 사고로 인해 불 속에서 완전히 타 버려 실종 상태가 되었을 거라는 가설. 하지만 그렇다면 "아이들은 동반자 없이 둘이서만 여행했다"는 검표원의 증언과 모순된다. 동반자 없이 다니는 아이들은 검표원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얘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검표원이 무엇하러 그런 걸 꾸며서 말하겠느냐는 의문이 또 남게 된다. 굳이 설명하자면 동반자들이 따로 탑승했기 때문에 몰랐을 수 있다.
- 부모는 사고 당시에 외국에 나가 있었고 사고가 난 뒤 한참 동안이나 사고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학교에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는 가설도 있다.[1] 학교 측에서는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부모를 따라 외국에 갔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부모들은 아이들 혼자서 여행하다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뒤늦게 사건에 등장함으로써 각종 언론들이 차필드의 미스터리가 해결되었다고 대서특필하며 소란을 피우는 와중에 뛰어들기가 겁이 나서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여러 가설들 중에서 어느 하나 확실하게 증명된 것은 없었기에 결국 두 아이의 정체는 영영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정말로 연고가 없는 아이였을 수도 있다.
4. 사고 이후 묘지를 찾은 사람들
차필드에 세워진 사고 희생자 추모비
사고 이후 아이들의 시신은 차필드의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런데 지방신문에 따르면 그 사고가 있은 후 1950년대 후반까지 사고가 발생했던 날에 묘지를 찾아온 남녀가 있었다고 한다. 따로 운전사가 모는 차를 타고 온 그들 중 특히 여자는 검은 옷을 입은 채 울고 있었다고 한다. 위의 가설들 중 3번째 가설이 나온 이유도 이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남녀의 신원 또한 알 수 없었고 언론에서 접촉을 시도하자 그 이후로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만약 전술할 3번 가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21세기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일 것이 확실하니 앞으로 밝혀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