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7:20:22

찰리노 산체스

<colbgcolor=#900020><colcolor=#fff> 찰리노 산체스
Chalino Sánchez
파일:찰리노산체스.jpg
본명 로살리노 산체스 펠릭스
Rosalino Sánchez Félix
출생 1960년 8월 30일
멕시코 시날로아
사망 1992년 5월 16일(향년 31세)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배우자 마리셀라 발레호스 펠릭스
1. 개요2. 상징3. 생애
3.1. 어린 시절3.2. 산체스의 살인보복 사건3.3. 미국에서의 생활3.4. 멕시코로 돌아오다3.5. 가수 생활3.6. 코첼라 총격 사건
4. 사망5. 이후 평가

[clearfix]

1. 개요

멕시코싱어송라이터.

2. 상징

그의 상징은 M1911권총이다. 대부분의 산체스의 사진에 이 권총이 있는데 이유는 산체스의 살인보복 사건이다.

3. 생애

3.1. 어린 시절

산체스는 1960년 8월 30일 멕시코 시날로아의 한 농촌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로살리노 였지만 너무 여성적으로 들린다고 생각했던 그는 "찰리노" 라는 별명을 더 선호했다.

그는 8자녀중 막내였고 그의 아버지인 산토스 산체스는 찰리노가 6살이 되었을때 사망했다.

이후 그는 빈곤하고 폭력적인 주변 환경, 그리고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기회 속에서 자라게 된다.

3.2. 산체스의 살인보복 사건

산체스가 15살이 되던해 자신의 여동생이 강간당하자 산체스는 가해자를 찾아가 권총으로 가해자의 머리를 날렸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티후아나로 이사하게 되고 그 곳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밀입국 시키는 "코요테"로서 일하게 된다.

1977년 그는 멕시코 사법 당국을 피해 미국으로 도주한다.

3.3. 미국에서의 생활

그는 미국에서 시애틀포틀랜드의 농장에서 일했고 1984년 그의 이모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접시 닦기, 차량 판매 그리고 소량의 마약을 거래하며 지냈다.

그 외에도 그는 리고 캄포스라는 마약상이자 식당 주인의 마약 거래를 도왔고 형인 아르만도의 불법이민자 밀입국 사업도 도왔다.

이후 1984년 아단 산체스라는 여성을 친척을 통해 소개 받게되는데 첫째 아들인 아단 산체스를 임신 하고 있던 중 결혼하게 된다.

3.4. 멕시코로 돌아오다

1984년, 형인 아르만도가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총에 맞아 숨지게 된다. 이 사건은 후에 찰리노가 그의 첫 코리도 [1] 곡인 "Recordando A Armando Sánchez."를 작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즈음 찰리노는 경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티후아나 소재의 감옥에 수감되게 되는데 그는 이곳에서 까막눈인 마약거래상 동료 수감자들의 경험담을 노래로 만들어 주고 그 대가로 현금이나 시계 혹은 총을 받게된다.

3.5. 가수 생활

찰리노는 그의 첫 데모들을 앙헬 파라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게 된다.

1987년 찰리노는 지역에 있던 15명의 "힘있는 사람들"에게 각 한 곡, 각 한 복사본씩 의뢰를 받아 처음으로 스튜디오 녹음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녹음 때 고객들이 추가 복사본을 요청하자 앙헬 파라는 300개의 카세트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이는 날개 돋힌 듯 팔리게 되었으며 재주문까지 들어오게 된다.

찰리노는 이 카세트들을 그의 차 트렁크나 플리 마켓에서 팔았고 킨세아녜라[2]나 세례성사에서 공연도 했다.

1989년 찰리노는 그간 해오던 돈벌이들을 전부 포기하고 스스로 레이블을 설립하여 본인의 음악 카세트를 전업으로 판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로스 아마블레스 델 노르테 라는 밴드가 찰리노의 고정 밴드가 된다.

찰리노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도 하게된다.

찰리노는 또 다른 멕시코 출신 이민자인 페드로 리베라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찰리노를 신타스 아쿠아리오라는 작은 녹음 스튜디오와 연결 시켜주었고 찰리노는 그들과 녹음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3.6. 코첼라 총격 사건

1992년 1월 25일 오후 11시 40분경 캘리포니아 코첼라에 소재한 나이트클럽에서 약 400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공연을 하던 중 헤로인과 술에 취해있던 32세의 에두아르도 가예고스가 "El Gallo de Sinaloa"라는 곡을 불러줄 것을 요청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로 뛰어 올라와 찰리노에게 총 4발을 발사했다.

이에 산체스는 대응 사격을 하였으나 총탄 걸림이 발생하였고 이에 산체스는 총을 가예고스에게 집어 던졌다.

가예고스가 쏜 총알 중 두 발은 찰리노의 겨드랑이 근처 가슴팍을 뚫고 폐를 명중했으며 한 발은 아코디언 연주자의 허벅지에 명중했다.

찰리노가 쏜 총알은 가예고스를 피해갔으나 근처에 있던 20살의 클라우디오 레네 카란자를 맞혀 사망하게 만들었다.

대략 9발에서 15발의 총알이 발사되었으며 대략 10명 정도가 총격을 받았다.

가예고스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제압 되었고 누군가 그의 총으로 가예고스의 입을 쏴버린다.

이후 찰리노와 가예고스는 위중한 상태로 팜스프링스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게 된다.

총격에서 살아남은 가예고스는 살인미수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으며 2023년 가석방 되었다.

이 총격 사건은 찰리노의 유명세를 더욱 높이게 되는데 마약과 관련되지 않은 노래인 "Nieves de Enero"의 라디오 송출 횟수가 크게 증가하게 되고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 시작 6시간 전부터 클럽이 가득 차는 등 그의 인기는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4. 사망

파일:찰리노.jpg
그의 생전 마지막 사진. 그가 들고있는 종이는 카르텔의 살인예고 편지

1992년 5월 16일 멕시코 쿨리아칸 에서 공연을 하던 중 관중 속의 누군가에게 쪽지를 건네 받게 되는데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살해 협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당 공연의 영상에서 보이는 찰리노는 심각한 얼굴로 건네받은 쪽지를 구겨 넣고 공연을 계속한다.

공연이 끝나고 자정 이후 찰리노는 그의 형제 두 명, 친척 그리고 여러 젊은 여자들과 클럽을 나서는데 이후 다수의 무장한 검은 양복들이 타고 있는 서버번이 찰리노의 차를 멈춰 세우고 주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그들의 지휘관이 찰리노를 보자고 했다고 말한다. 찰리노는 수긍한 후 그들의 차에 타게 된다.

다음날 아침 두 명의 농부가 쿨리아칸 로스 로렐레스 근처 멕시코 15D번 고속도로 주변의 수로에서 안대가 씌워져 있고 손목에 로프로 묶인 흔적이 있는 찰리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사인은 머리 뒤에서 가해진 두 발의 총격이었다.

이후 찰리노의 시체는 시날로아에 위치한 판테온 데 로스 바시토스에 안치된다.

5. 이후 평가

파일:산체스 평가.webp
로스앤젤레스의 한 산체스 벽화

찰리노는 훈련된 가수가 아니었으며 본인 조차도 본인의 스타일을 '짖는다'고 표현했고 또한 음정이 자주 나가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하고 진실된 가사는 그를 칭송받게 만들었다.

찰리노의 팬들은 그를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닌 "진짜배기"로 생각하고 있다. 찰리노는 시날로아 방언으로 노래 했는데 이는 그 어떤 유명한 가수도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일이다.

그의 사망 이후 찰리노의 인기는 치솟았으며 약 150개의 코리도 곡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또한 그의 곡들은 그의 사망 이후에도 많은 스페인어 라디오 채널에서 송출되었고 아직도 젊은 히스패닉 세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찰리노는 주요 팬층 뿐만 아니라 Snoop Dogg과 같이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로 부터도 칭송받고 있다.


[1]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 혹은 시를 노래하는 발라드 장르의 한가지. 범죄자 의 역사나 일상 생활에 관한 내용인 경우가 많다.[2] 15세를 맞이하는 여자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