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
한국사에 철주라는 지명을 쓰는 지역이 2곳 등장한다. 하나는 발해의 철주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의 철주인데, 둘 모두 같은 한자[鐵州]를 사용한다.1.1. 발해의 철주
신당서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62주 가운데 하나.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소속으로 철주라는 이름은 주의 행정수도가 위치한 위성현(位城縣)에서 철광석이 풍부하게 산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2. 고려의 철주
강동6주의 하나. 서희의 담판으로 얻은 땅에 설치되었다. 무신정권 시기인 1172년(명종 2년) 대대적인 민란(철주민란)이 발생한 적이 있으며, 1231년 몽골군이 침공해오자 철주성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 된다. 현재의 평안북도 철산군이며, 철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바꾼 이름.2. 고사성어
고사성어 | ||
掣 | 肘 | |
당길 철 | 팔꿈치 주 |
팔꿈치를 당긴다는 뜻으로, 옆에서 잔소리하고 간섭하여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은 여씨춘추(呂氏春秋) 심응람 구비편(審應覽 具備篇).
노나라에 공자가 주재하고 있던 시기 공자의 제자 가운데 복부제(宓不齊)라는 인물이 있었다. 관직에 나아가게 되어 단보(單父)[1]라는 작은 현의 수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외지에 부임하게 되면 왕이 자신을 의심하여 정책을 뜻대로 펴지 못하게 되리라 예상한 복부제는 왕에게 청하여 왕의 근시(近侍) 두 명을 임지에 데려가게 되었다.
임지에 도착하자 데리고 온 근시들에게 문서작성업무를 맡아보게 하였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복부제가 그들 곁으로 와서 팔을 잡아당기고 붓을 건드려 글 쓰는 것을 방해하였다. 당연히 필체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글씨도 제대로 못 쓴다며 뭇 사람 앞에서 비난하고 갈궈대기까지 했다.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두 사람이 일을 사퇴하고 왕에게 돌아가 징징대자, 벙찐 왕이 공자를 불러서 '너님 제자 성격 해괴함. 대체 저런 애를 추천한 이유가 뭐임?'하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아니 너님이 먼저 복부제 갈궈대지 않았음? 애시당초 백리지재도 아닌 애를 그딴 촌구석에 쳐박아놓은 데다가 냅뒀으면 어련히 잘 했을 애를 귀찮게 했으니 갸도 똑같은 행동으로 보여준거임.'하고 대답했다.
이에 느낀 바가 있는 왕은 복부제에게 '지금부터 단보는 알아서 다스려라. 5년에 한 번 성과만 보고하면 된다.'고 지시하며 훈훈한 결말을 맞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