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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5 07:40:01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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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주요 활동3. 역사4. 아수나로 강간사건5. 기타6. 관련 문서

1. 소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04년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에서 시작하여 2006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청소년인권 단체이다. 아수나로라는 이름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 나오는 가상의 청소년 조직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설에서 청소년들은 아수나로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운다고 한다. 일본어로 측백나뭇과의 침엽수인 나한백을 가리키며 불멸과 불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영문명은 "ASUNARO: Action for Youth Rights of Korea"이다.

2. 주요 활동

주로 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비판하며 이와 관련된 여러가지 온·오프라인 활동들을 진행했다.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 참석, 발언권을 얻어 활동한 내용 링크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wMMXPDAg

3. 역사

2004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서 활동했던 2~3명과, 우리스쿨을 비롯해서 청소년인권과 정치 관련 여러 활동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행청(행동하는 청소년)과 청힘(청소년의 힘으로), 전청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를 만들었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의 활동가들은 2006년 2월 총회에서 단체의 명칭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쪽으로 변경하였는데 이것은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 일부가 함께 운동을 하는 체제이자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들어가는 취지로 한것이다. # 그 당시 로고이다. 2006년~2009년 초까지 사용하였다. 출처

처음 시작할 때 만들어졌던 지부는 서울지부와 진주지부 정도였지만 2006년 한 해 동안 울산, 광주, 부산 등지에서 지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6년 주요 활동은 거리 캠페인5.14 집회, 양동중학교 학내시위 대응, 자전거시위, 서울동성고 1인 시위[3] , 학생인권법 통과를위한 활동 등이 있으며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2007년 1월에 아수나로의 활동 방향과 지향점 등을 담은 회칙과 기본원칙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아수나로 내에서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내규도 만들어졌으며 각 지역모임(지부)들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간 때였다.

그당시 초반에는 특정 대학에 합격한 것을 알리는 현수막을 철거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었고, 강제야자에 반대하는 버튼을 비롯한 각종 전단지 물품들이 제작되었다. 또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4.14 미친학교를혁명하라’ 집회가 열렸다. 또한, 그들은 서울, 울산 등지에서 일어났다는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내시위에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이외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8월 부산에서는 체벌로 인해 숨진 학생을 추모하고, 학생인권 보장 6대 요구안 제시, 입시폐지·대학평준화운동에 참여, 대선에서의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 등 많은 일들을 하였다.

2008년때는, 5월 촛불항쟁이 시작되면서 서울, 부산, 울산에서 진행된 ‘5.17 청소년 행동의 날’ 집회, 8월 부산·울산·경남 청소년인권 행진 ‘이유 있는 반항’ 등이 있고, 서울에서는 교육감 선거를 ‘캐발랄 젊은 후보 기호 0번 청소년’이 직접 출마 선언을 하고, 활동을 하였다. 10월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기도 하는등 이처럼 2008년부터의 활동들은 주로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활동들이 되었다만, 7월에 경남 마산에서 학내시위를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학내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도 있었다.
2009년 주요 활동은, 서울에서는 20년 만에 청소년들이 농성을 하기도 했으며, 활발하게 일제고사로 인한 폐해와 인권침해를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경남에서는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와 학교 내 휴대전화 규제 조례에 반대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외에도 이슈파이팅 부분을 뺀 활동이나 성과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가 아수나로의 활동가들과 아수나로가 아닌 개인 활동가들의 참여로 2년여의 작업 기간을 거쳐 메이데이 출판사를 통해 전국 서점에 정식으로 출판된 것이 있었다. 또한 학내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인 <스쿨어택>이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학생인권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초·중·고 12년 여 간 감옥 같은 학교에서 살다가 졸업을 하게 된 활동가들이 두부를 먹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3월 및 7월 일제고사와 경쟁교육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참고문헌

4. 아수나로 강간사건

내부 활동가에 의해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고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

내부 회원에 의해 발생한 강간사건에 대해 MeToo 운동이 발생하였고, 2차가해[4]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사실을 밝힌 피해자[5]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커녕 변명만 일삼고 있으며 본인들의 SNS를 통해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자, 2016년[6]에 활동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있냐고 조롱하고 있다며[7] 아수나로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을 촉구중이다. MeToo전문 수록 페이스북에는 아수나로측 입장문도 담겨있으니 참고바람.

아래는 피해자 입장이다.
아수나로가 제 호소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였고, 이에 대한 피해자 2차 입장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들은 반성한다고 하고 있으나,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의료비 배상은 커녕 변명만 일삼고 있으며, 본인들의 SNS를 통해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자" "2016년에 활동하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남아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16년에 활동하던 이들은 아직도 아수나로에 남아있고, 아수나로가 피해자에게 끼친 피해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수나로는 변명하지만, 저는 아직도 병원비 걱정에 더 우울할 날을 위한 약을 모읍니다. 우울함을 이유로 저는 잠을 자고, 사소한 일에도 고개를 드는 죽고싶다는 생각을 눈물로 지웁니다.

아직 피해자에게 연명의사를 밝힌 단체는 한 곳도 없습니다. 피해자는 청소년 인권에 동조하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냈고, 많은 단체들에게서 "우리 단체가 이미 연명하고 있는 사안들이 있어서 참여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바로 그 이유로 아수나로 곁에 사람들이 서있습니다. 그러나 제 곁엔 아무도 없습니다. 피해자에게 막 대하는 단체라 할지라도 이미 하고 있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곳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겠죠.

그러나 단언컨대, 제대로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겉치레뿐 단체는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어야 합니다.

피해자에게 남은건 970건의 트위터 리트윗 기록뿐입니다. 나머진 아수나로가 "내부고발자 색출" 등 사유를 들어 공격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 마지막일지 모를 호소입니다. 저는 이 방법을 제외하고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적절차 외 제 권리를 호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발 많은 단체들이 연명해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밑의 사진은 순서대로 피해자 입장문, 아수나로 입장문, 피해자 2차 입장문입니다.

피해자는 행성인, 친구사이, 녹색당 및 각 시도당, 노동당 및 각 시도당, 민중연합당 및 각 시도당, 정의당 및 각 시도당, 기타 청소년인권 관련한 연명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 단체들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피해자는 모든 단체에 메일을 보낼 수 없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의 반응이 필요합니다. 주변 활동가들을 이 글에 태그해주시고, 아수나로가 보이는 반응들을 주변에 공유해주세요.

그들이 소년법 개정을 말할 때, 저는 개정[8]한 소년법정 앞에서[9] 울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2차가해를 했지만, 저는 울고만 있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까지 함께 싸워주세요.

5. 기타

6. 관련 문서



[1] ASUNARO 중 A를 사람 모양으로 형상화했다.[2] 아수나로의 대표적인 학교 개혁운동 예시로는 스쿨어택(SCHOOL ATTACK) 운동이다. 이것은 아수나로에서 학교 안의 학생인권침해들과 교육의 문제를 가지고 학교 현장에서 적극 싸워나가고자 하는 취지로 만든 것이며# 교내안에서 서명 운동이나 전단 배포 혹은 그것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것이다. 대표예시1, 대표예시2[3] 저거 하고 난 뒤에 그는 학교에서 불합리하게 징계를 받았고, 그가 소속되었있던 `아수나로'를 포함한 여러시민단체들이 이 징계에 관한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4] 흔히 남용되는 의미의 2차가해가 아니라, 단체차원 의무를 방기하고 책임을 뻔뻔하게 회피한 2차가해이다.[5] 김풀[6] 사건이 발생한 년도[7] 아수나로 "치이즈" 활동가다. #1 #2[8] 앞의 개정과 뒤의 개정의 의미가 다르다. 앞의 개정은 법률의 수정을, 뒤의 개정은 재판의 시작을 말한다.[9] 피해자는 판사의 허가가 있어야 재판에 출석할 수 있으며, 의견진술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소년법은 가해자의 교화를 위하기 때문.[10] 아수나로는 전교조 회원들과 같이 활동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보수 진영에서는 아수나로의 외부세력은 전교조라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11] 근데 아수나로는 청소년을 '학생'으로 범주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청소년을 무조건 학생으로만 보는 행위는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상관이 있을지도..